“도시바, 지지부진 반도체 매각에 시간·사람 잃고 있다”

by김형욱 기자
2017.09.14 12:00:55

일본 내 경쟁력 약화 우려 고조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일본 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매각 장기화에 따른 투자 지연이 낸드플래시 점유율 세계 2위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14일 “반도체 매각을 둘러싼 ‘연장전’이 이어지면서 도시바가 시간과 사람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현 상황을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역대 최악의 자금난에 빠진 도시바는 자금 마련을 위해 올초부터 20조원대로 추산되는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추진해 왔다. 매물 자체가 매력적인만큼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덴 성공했으나 ‘암초’를 만나 아직 단독 협상 대상도 정하지 못했다. 미 반도체회사 웨스턴디지털(WD)-KKR(美헤지펀드) 진영이 기존 협력 관계를 이유로 SK하이닉스(000660)-배인캐피털(美헤지펀드) 등 경쟁자 매각을 막은 채 유리한 협상 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을 넘기면 은행 자금융통이 어려워지고 상장폐지도 확실시되면서 도시바 전체의 생존도 위태로워진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도시바가 정체된 사이 한국, 미국 경쟁사가 생산설비를 확보하고 기술자를 빼가는 것은 물론 TSMC 같은 중국계 기업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움직임도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낸드플래시 부문 1위인 삼성전자(005930)가 최근 중국 반도체공자아 증설에 8조원을 투자키로 한 데 대한 경계감을 내비친 것이다.

실제 올 들어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시장조사업체 IHS마르키트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7%, 도시바와 WD가 각각 17.2%, 15.5%였다. 지난해 연간으론 삼성전자가 35.2%, 도시바와 WD가 19.3%, 15.5% 순이었었다. 도시바 인수를 노리는 SK하이닉스의 점유율도 지난해 10.1%에서 11.4%로 오르며 미국 마이크론(12.0%→11.1%)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도시바의 점유율 하락분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눠가진 형국이다.

도시바의 일본 욧카이치(四日) 반도체 공장에선 납품사인 반도체제조장비 회사가 고객사인 도시바에게 “이대로면 연내 납품할 수 없다. 빨리 결정해라”며 반대로 독촉하는 실정이란 게 닛케이의 설명이다. 선행투자가 필수인 반도체 업종 특성상 당장 투자가 늦어지면 2년 뒤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필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는 도시바와 WD가 매각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공장 운영을 위한 정보 교류도 멎어버린 비정상적 운영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면 매각 절차도 걱정이지만 매각이 이뤄진 이후의 경쟁력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여론의 우려다.

한편 도시바는 지난 8월 말 두달 전 SK하이닉스 측과의 우선협상 결정을 뒤집고 타사 매각중단 가처분 소송으로 발목을 잡아 온 WD와 사실상의 우선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이달 13일 또 다시 앞선 결정을 뒤집고 SK하이닉스 측과의 우선협상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