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1980년대 수준 침체 위기 직면…"'S' 공포 부추기는 강달러 현상"

by이윤화 기자
2022.09.21 13:47:46

기재부, KDI ''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 공동 개최
신흥국 및 개도국의 물가 상승 압력, 경기 하방 위험 커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 10% 더 절하, 인플레 2% 높였다
"긴축으로 인플레 잡되 재정 여력 확보, 추가 대응 필요"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한국을 찾은 글로벌 석학들이 세계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국면에 진입한 가운데 신흥국이 1980년대와 같은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단 경고를 내놨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긴강, 공급망 교란 등 다양한 경기 하방 위험 속에서 미국의 강력한 통화긴축이 만들어낸 달러 강세가 신흥국 경제에 타격을 가중시킨단 분석이다.

2022 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국제금융시장의 위험 요인과 국제금융체제의 미래를 주제로 ‘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를 공동 개최했다. ‘주요국 통화긴축 가속화 및 세계경제 위험요인’을 주요 논제로 한 첫 번째 세션에는 아이한 코제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개발전망국장, 토비아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통화 및 자본시장국장, 히란야 무코파디아이 아시아개발은행(ADB) 거버넌스 그룹 수석이 연설에 나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속에서 신흥국 경제에 미치는 위험이 특히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코제 국장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통화정책 긴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교란, 금융 스트레스, 에너지·식량 가격, 무역 분절화 등 다양한 하방 위험이 겹쳐 있다”면서 “신흥국은 1980년대 수준의 경기침체를 겪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세계 물가가 올해 3.6%에서 8% 수준으로 상향 조정되고, 성장률은 4% 수준에서 2.7%로 하락하는 등 1970년대 수준의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이 만들어졌다”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약 50여년만에 동시다발적으로 최고 강도 수준의 통화긴축을 진행하고 있고, 이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등에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게 만들고 부채상환 능력을 악화시켜 금융위기까지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제 국장은 1970~1980년대 경기침체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진 뒤 장기 침체 국면을 마주한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보게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지금 수준보다 더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인플레이션이 잡히겠지만, 인플레이션을 팬데믹 이전 수준인 3%대로 낮출 정도로 고강도 긴축(금리를 6%대로 높이는 정도)이 이뤄질 경우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면서 “통화, 재정 긴축 정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에너지 공급 확대 등 다른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도국 국가들과 더 밀접하게 소통하는 히란야 무코파디아이 ADB 그룹 수석은 코로나19 팬데믹 충격 회복도 덜 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쌍둥이 충격(트윈 쇼크)’가 겹치며 개도국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개도국들은 당장 식량 위기를 걱정할 만큼 스태그플레이션 고통이 더 큰 상황인데, ADB 회원국 중 단 한 곳도 경기를 방어할 만큼의 추가 재정 여력이 있는 곳이 없고 국가부채 비율도 높아 아주 우울한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조세개혁을 이어가되 팬데믹 국면에서 시행했던 면세 조치의 정상화, 공공재산화를 수익화 등을 통해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석학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신흥국은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통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정책이 이를 뒷받침 해야 한단 해법을 제시했다. 토비아스 아드리안 IMF 통화·자본시장국장은 신흥국에서 자본유출 압력이 커지면 성장률 하락,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등 악순환 요인으로 작용 할 수 있단 점을 강조하면서 외환시장개입, 거시건전성 조치, 자본이동관리조치 등 가용할 수 있는 추가 정책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달러 지수가 오른 것보다 신흥국 통화 가치는 10% 더 떨어지면서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2% 가량 더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통화 긴축을 강화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잘 묶어놓고, 시장 변동성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중앙은행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야한단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재정은 통화정책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드리안 국장은 신흥국이 이와 더불어 ‘통합 정책 프레임워크’(Integrated Policy Framework·IPF)를 동시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IPF는 외환시장의 깊이가 깊지 않거나, 외환수급 불일치가 존재하거나 혹은 환율 변동에 따른 인플레이션 장기화 등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 외환시장개입, 거시건전성 조치, 자본이동관리조치 등이 도움이 된다는 정책프레임워크다. 그는 “환율 상승은 자본 유출 뿐만 아니라 생산성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 IFP 정책의 활용이 필요하지만,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