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국영 팬들, 홍콩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사연?[알쓸공소]

by장병호 기자
2024.09.20 14:00:00

극단 명작옥수수밭 연극 '굿모닝 홍콩'
홍콩영화 추억과 민주화운동 엮은 작품
'영웅본색' '천녀유혼' 패러디로 웃음 선사
홍콩 통해 한국 근현대사 조명 흥미로운 서사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홍콩영화 좋아하시나요? 개인적으로 홍콩영화를 즐겨보진 않았지만, 홍콩영화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기억합니다. 동네마다 비디오 가게가 있던 시절이었죠. 홍콩의 사대천왕으로 불린 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의 사진이 동네 문방구 앞에 걸려 있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고리타분한(?) 옛이야기일까요. 하지만 추억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홍콩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홍콩영화에 대한 추억을 가득 담은 연극 한 편이 최근 무대에 올라서입니다. 지난 5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 중인 연극 ‘굿모닝 홍콩’입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연극을 꾸준히 선보여온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2022년 초연한 작품인데요. 초연 당시 줄거리가 흥미로워서 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재공연을 하면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작품 배경은 2019년입니다. 한국의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멤버들이 2003년 세상을 떠난 홍콩배우 장국영을 기리고자 홍콩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홍콩에서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촬영지를 찾아다니며 그를 오마주하는 영상을 촬영합니다. ‘장사모’ 부회장의 처남인 기찬도 이들과 함께 홍콩을 찾는데요. 기찬은 1987년에 나온 희귀 아이템인 나이키 ‘에어조단2’ 운동화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기찬에 따르면 장국영이 소장했던 ‘장국영 에디션’ 에어조단이죠.

공연장부터 장국영과 홍콩영화의 추억이 가득 느껴집니다. 공연 시작 전 장국영이 부른 노래가 흘러나오는데요. 무슨 노래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장국영, 주윤발이 출연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종횡사해’ 주제가 ‘풍계취속’입니다. 공연 첫 장면도 익숙합니다. 영화 ‘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송자걸의 마지막 장면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펼쳐지죠. 홍콩 느와르 특유의 총격 신이 무대에서 펼쳐져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아비정전’, ‘패왕별희’, ‘백발마녀전’, ‘해피투게더’ 등 장국영의 대표작도 공연 내내 끊임없이 언급됩니다. 특히 공연 중반부에 등장하는 ‘천녀유혼’ 패러디 장면은 ‘굿모닝 홍콩’의 백미죠. 배우들이 온몸을 내던지며 펼치는 열연을 보다 보면 영화도 덩달아 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2019년 홍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봅시다. 2019년 중국이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하자 홍콩 시민은 이 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며 법안을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습니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다시 일어난 대대적인 민주화 운동이었죠. ‘장사모’는 가는 곳마다 시위대와 맞닥뜨리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찬이 구해온 운동화가 시위 도중 사라지면서 ‘장사모’ 또한 뜻하지 않게 홍콩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되죠.

이쯤 되면 ‘굿모닝 홍콩’이 단순히 장국영과 홍콩영화를 추억하기 위해 만든 연극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입니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명작이 옥수수처럼 풍성하게 열리는 밭’의 줄임말로 극작가 겸 최원종이 이끄는 단체인데요.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로 ‘타자기 치는 남자’, ‘깐느로 가는 길’, ‘패션의 신’, ‘메이드 인 세운상가’ 등을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깐느로 가는 길’을 예전에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1998년을 배경으로 ‘한국영화 마니아’로 알려진 북한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남파간첩이 한국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사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절묘하게 녹여낸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죠.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굿모닝 홍콩’이 궁금했던 이유도 장국영과 홍콩영화의 추억을 어떻게 홍콩 민주화 운동과 함께 풀어냈을지에 있었습니다. ‘장사모’ 멤버들은 처음엔 시위대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들은 그저 장국영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홍콩을 찾은 것이니까요. 그러나 시위대가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경찰과 맞서는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 서서히 감화됩니다. ‘장사모’가 장국영을 보러 홍콩에 왔다고 시위대에 이야기를 하자, 시위대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부르며 이들을 환영하죠. 돌이켜보면 홍콩영화가 전성기였던 80~90년대에는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큰 화두였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반복됩니다. 이를 문화가 하나로 이어줍니다. 그런 점에서 ‘굿모닝 홍콩’은 홍콩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게 하는 이색적인 시도라 할 만합니다.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습니다. ‘장사모’ 멤버 중 한 명을 여성 동성애자로 설정한 부분은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소극장 연극인데도 무려 19명의 배우가 출연하다 보니 장면 전환이 어수선한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장사모’ 멤버들이 왜 장국영에 매료됐는지에 대한 묘사도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소극장 연극임에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장국영, 그리고 홍콩영화에 추억이 있다면 많은 장면들이 즐거울 것입니다. 장국영과 홍콩영화에 대한 추억이 없다고요?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오래전 좋아했던 영화, 배우 등은 하나쯤 있지 않을까요. ‘굿모닝 홍콩’은 추억과 지금 시대를 함께 이어주는 작품입니다. 공연은 오는 27일까지 이어집니다.

연극 ‘굿모닝 홍콩’의 한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