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광 잇는 탐욕캐…황정민, 총칼 쥔 '맥베스'로 소름 유발 열연

by김현식 기자
2024.07.18 12:00:00

셰익스피어 희곡 원작 연극 ''맥베스''
주연 황정민, 2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로
김소진·송일국·송영창 등과 연기 호흡
그로테스크한 미장센·현대적 연출 돋보여
8월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사진=샘컴퍼니)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양손에 피를 묻힌 채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 황정민. 광기에 찬 눈빛과 표정을 한 채 넋이 나간 듯 몸을 숨길 곳을 찾아다니고 철제계단을 오르내리며 방황한다. 그야말로 소름이 돋게 하는 그의 압도적 연기력은 어느새 관객을 기이한 분위기의 욕망의 폐허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지난 13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극 ‘맥베스’의 한 장면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마녀들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뒤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혀 끝내 파멸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바람아 불어라, 오너라 파멸아!” 황정민이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행한 뒤 죄책감과 두려움에 신음하다가 끝내는 폭군이 되는 주인공 맥베스를 연기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김소진은 맥베스의 야망의 불씨를 키우는 그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 역으로, 송일국은 절친한 동료 맥베스의 죄책감과 번뇌를 한층 더 커지게 하는 뱅코우 역으로 출연해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사진=샘컴퍼니)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빔프로젝터와 레이저 등을 활용한 현대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칼뿐만 아니라 총까지 사용하며 싸움을 펼치고 심지어 영상통화로 소통을 나누기도 한다. 만찬 장면에선 대뜸 핸드 마이크를 들고 회식 분위기를 내며 연설을 해 폭소를 유발한다.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관 속에서 원작과 같은 흐름과 내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주를 거쳐 왕이 된다는 예언으로 용맹한 장군 맥베스를 흔드는 세 마녀를 원작과 달리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설정해 지하세계의 악당처럼 묘사했다. 세 마녀가 사악한 모습으로 사탄을 상징하는 숫자 ‘666’을 외치고 ‘육망성’ 마법진을 만드는 장면은 오컬트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이 가운데 주요 분기점마다 연처럼 허공에 띄우는 까마귀떼는 스산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배우들이 종종 객석 옆 계단까지 내려와 연기를 펼치는 점도 재미 요소다.

(사진=샘컴퍼니)
(사진=샘컴퍼니)
샘컴퍼니가 제작한 6번째 연극 작품인 ‘맥베스’는 8월 18일까지 공연한다. 지난해 천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 역으로 열연한 황정민의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주목 받는 중이다. 황정민이 ‘서울의 봄’에 이어 다시 한번 권력을 탐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품에는 황정민, 김소진, 송일국을 비롯해 송영창(덩컨), 남윤호(맥더프), 홍성원(맬컴), 임기홍·윤영균·김범진(이상 마녀들)이 출연한다. 러닝 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120분. 양정웅 연출은 제작발표회 당시 현대적 미장센을 가미하되 정통에 가깝도록 연출해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대사와 완성도 높은 비극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