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수 역할 거부한 바이낸스…FTX에 곡소리 나는 코인시장

by이정훈 기자
2022.11.10 11:10:48

비트코인 한때 1만5천달러 추락…24시간새 130兆 증발
FTX 인출중단에 파산설…1등社 바이낸스도 인수 철회
얼어붙은 투자심리…대규모 선물 매수 청산까지 악재로
"비트코인 9천달러 가도 안 놀라"…위험해소부터 확인해야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전 세계 1등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마저도 FTX에 등을 돌렸다. FTX의 뱅크런과 잠재적인 파산 가능성을 막아줄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연쇄적인 가격 하락에 가상자산시장에서도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FTX 사태가 해소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가격 바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쉽사리 반등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10일 시장 데이터업체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50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에 비해 12% 이상 급락한 1만6189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장중 한때 1만5000달러대로 추락하며 근 2년 만에 최저치를 새로 쓰기도 했다.

이더리움 역시 24시간 전에 비해 14% 가까이 급락하며 1140달러선까지 주저 앉았다. 이에 가상자산시장 전체 시가총액도 8122억달러 수준까지 내려왔다.

FTX와 FTX US, 알라메다 리서치 등 자매회사들 간의 불투명한 거래와 지원으로 난맥상을 드러낸 FTX가 뱅크런에 맞서 인출 중단 조치를 이어가면서 시장 투자심리를 악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이 사태를 진정시켜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바이낸스가 소방수 역할을 거부하자 시장은 더 얼어 붙었다.

이날 바이낸스는 성명서를 내고 “애초에 우리는 FTX 고객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해 주기 위해 인수를 계획했지만, FTX의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는 능력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며 인수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하루 전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와 샘 뱅크먼 프리드 FTX CEO가 직접 인수의향서(LOI)에 서명한 지 딱 하루 만이었다.

다만 LOI라는 게 애초에 구속력이 없는 계약이다 보니 바이낸스와 자오창펑 입장에서는 언제든 인수에서 발을 뺄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바이낸스는 왜 FTX 인수 계획을 철회했을까. 이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FTX의 잠재 부실이 워낙 컸을 수 있다는 점이다. LOI 체결 직후 바이낸스는 FTX에 대한 실사에 나섰는데, 전날 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낸스가 실사하는 과정에서 FTX의 재무제표에서 부채와 자산 간에 60억달러 이상 금액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벤처캐피탈(VC)로부터 펀딩을 받으면서 320억달러(원화 약 43조8000억원)의 몸값을 받았던 FTX를 인수하는 것도 버거운데, 이처럼 60억달러에 이르는 잠재 부실까지 떠안을 경우 바이낸스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독과점에 대한 규제나 투자자들과의 법적 분쟁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월가 투자은행인 코웬에 따르면 바이낸스와 FTX가 합쳐질 경우 코인 거래시장에서 80%에 이르는 엄청난 점유율을 보이게 된다. 이는 사실상의 독과점으로 비쳐질 수 있다.



번스타인은 “이처럼 시장에서 독점이 나타나게 된다면 미국과 유럽 등의 경쟁당국이 개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FTX의 뱅크런 사태를 촉발시킨 것이 자오창펑의 FTT 매각 발표였던 만큼 자신이 가격을 떨어뜨린 회사를 헐값에 인수할 경우 FTX 투자자들로부터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이낸스가 발을 빼면서 이 대형 거래소를 살 만한 주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1위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FTX를 인수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이번 사태로 인해 이미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FTX를 쉽사리 사줄 기업을 찾긴 어려울 전망이다.

일별 가상자산 선물 포지션 청산 추이


이럴 경우 FTX에 돈과 코인을 묶여 있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수 없게 되고, 신규 투자자 유입도 안 되면서 가상자산시장 전체의 거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반등을 노렸던 비트코인에겐 상승 에너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격 하락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선물 청산을 부르면서 악순환이 커지고 있다. 실제 간밤 24시간 동안 가상자산 선물에서만 8억3200만달러 어치의 포지션이 청산됐다. 이 중 72%가 비트코인선물 매수 포지션이었다. 이에 하룻밤 새 코인 시총 1000억달러가 증발해 버렸다.

시장은 3가지 악재에 동시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앙화 거래소에 대한 규제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재럿 세이버그 코웬 애널리스트는 “FTX 사태를 보면서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등 다른 중앙화 거래소도 규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SEC 입장에서도 코인 규제에 더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으론 마켓메이커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알라메다는 사실상 FTX 거래소의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FTT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셈인데, 이번 사태로 인해 거래소와 마켓메이커 간의 파이어월(방화벽)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코인시장에 긍정적인 펌핑을 차단할 수 있다.

끝으로, 투자자들의 신뢰 약화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밥 아이코노 패스트레이딩 창업주는 “이 시장에 또 다른 악재가 터져 버렸다”며 “비트코인이 이제 9000달러까지 간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라 장기 투자자 외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모야 오안다 애널리스트도 “이 시장에서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게 확인된 셈”이라며 “FTX로 인한 또 다른 전염 리스크가 나타날 지부터 확인돼야만 시장은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