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역 맡은 전직 국회의원들…외연 넓히는 LG

by피용익 기자
2020.09.07 11:00:30

장석춘·김규환 전 의원, LG전자서 노사관계·제품기술 자문
추혜선 전 의원은 ‘이해충돌’ 논란 끝에 LG유플러스서 사퇴

[이데일리 피용익 배진솔 김현아 기자] 전직 국회의원들이 LG그룹 비상임 자문역을 속속 맡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치인 출신이 대기업 고문이나 자문으로 이동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영입이 이뤄지자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특히 LG는 최근 수년간 의원 출신 자문역을 영입한 사례가 없었다.

LG그룹이 공격적으로 정치인 출신 인사를 자문역에 기용하는 것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과감하게 영입하는 구광모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재계에서 나온다.

SK와의 배터리 소송전 등 다른 대기업들과의 경쟁 관계를 고려해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영입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직 의원들 영입에는 최고경영진이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 전직 의원은 ‘이해충돌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 끝에 LG 행을 포기하기도 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옛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 출신 장석춘 전 의원과 김규환 전 의원은 최근 나란히 LG전자(066570) 비상근자문역을 맡았다. 임기는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1년이다.

장석춘 전 의원은 LG전자 노동조합 위원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을 거친 노사관계 전문가다. 제20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와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장 전 의원은 LG전자에서 노경(노사)관계 관련 자문을 맡는다.

장석춘 전 의원
LG전자 관계자는 “장석춘 전 의원은 우리 회사 노조위원장 출신이고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라며 “장 전 의원이 갖고 있는 노경관계 전문성을 고려해 비상임자문역으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장 전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LG전자에서 30년을 근무하고 나왔다. ‘노경’이란 용어를 탄생시키던 노사 격변기 때 제가 집행부에 있었다. 노경관계 노하우 때문에 영입 제안이 온 것 같다”며 “LG는 정도경영을 추구한다. 여기에 제가 힘을 보태면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LG전자 제품·기술 자문역으로 영입된 김규환 전 의원은 발명가다. 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1호이기도 한 그는 제20대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화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김 전 의원은 “과학, 발명이나 품질, 환경, 안전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겠다고 여러번 연락이 왔다. 명장 1호 출신 발명가라는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규환 전 의원
LG유플러스(032640)는 정의당 출신 추혜선 전 의원을 비상임 자문역으로 영입했지만, 추 전 의원은 1주일도 안 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추 전 의원은 제20대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을 지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가 LG유플러스로 이동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추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LG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원 여러분과 시민들께 큰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며 “앞으로 뼈를 깎는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송희경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LG경제연구원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프로젝트를 맡기로 했다. 공식 직함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KT에서 평창동계올림픽지원단장과 GiGA IoT 사업단장(전무)을 지낸 이력이 있다.

송 전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LG경제연구원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중요해진 데이터의 보호와 활용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기로 구두로 이야기 했는데, 최종 결정은 다음 주 이뤄진다”고 말했다.

추혜선 전 의원
구광모 회장은 LG그룹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인사 스타일을 갖고 있다. 비상임 자문역으로 전직 국회의원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앞서 LG화학은 2018년 11월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LG화학이 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사 뒤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 연말 인사에서는 김형남 전 한국타이어 부사장에게 LG 자동차부품팀장 자리를 맡겼다. 은석현 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전무를 LG전자 VS사업본부 전무로 영입하기도 했다. 홍범식 전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는 LG 경영전략팀장 사장으로 이동했다.

재계에선 LG그룹의 잇단 정치인 출신 영입이 다른 대기업들과의 경쟁 심화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LG그룹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 LG전자와 삼성전자와의 TV 화질 비방전, LG생활건강의 애경산업 상대 치약 상표권 소송 등 주요 현안에 적극 대응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자문역으로 영입해 미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 같다”면서도 “굳이 국회의원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타사와의 경쟁을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 나올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