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3천억불..이게 많은 걸까 적은 걸까?

by이진우 기자
2011.10.11 18:48:25

이데일리TV `이진우의 누구나 경제`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월말만 되면 늘 들리는 뉴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OOOO억 달러로 세계 7위 규모인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세계 7위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건지. 7위 밖에 안돼서 불안하다는 건지. 외환보유액도 돈일 테니까 일단 많으면 좋은 것 같긴 한데 가끔은 그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부족하면 넉넉하게 채워넣으면 될텐데 왜 그게 어려울까. 요즘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유럽 국가들은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서 저렇게 된걸까.
 



 
우리나라는 원유를 수입해다 쓰는 나라인데 원유를 살 때는 달러가 필요하다. 한국은행권 오만원짜리는 암만 많이 갖다 줘도 사우디가 석유 안준다. 원화는 우리끼리나 돈이라고 믿고 쓰는 거지 국제시장에서는 돈 취급을 못받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원화만 그런 건 아니다. 리라, 페소, 바트, 헤알 등등 대부분 나라들의 돈이 다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동양인 돈이라고 차별하는 건 아니니까 서러워할 건 없다.
 
어쨌든 기름 한 방울 안나는 우리는 원유를 사오려면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벌어와야 그 달러로 원유를 사올 수 있다. 그런데 수출업체들이 늘 일정하게 달러를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달러가 부족해질 듯하면 수출업체들도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그러면 석유사러 중동으로 가야 하는 정유회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석유를 못사오면 우리나라 공장들이 안돌아간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정부가 갖고 있는 달러뭉치가 외환보유액이다.
 
축구를 하다가 공이 관중석으로 넘어가거나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그 공을 다시 찾을 때까지 경기가 중단되는데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심판이나 볼보이가 여유분의 공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건 아니다. 외환보유고의 용도는 그것 말고도 많다. 우리나라 은행이나 기업에 달러를 빌려주는 외국인들은 혹시 그 돈을 못받게 될까봐 불안해한다. 달러를 빌려다 기계를 샀는데 그 달러를 갚아야 할 시점에 환율이 너무 올라가버리면(달러 값이 비싸지면) 그 기업은 원화를 아무리 많이 들고 있어도 필요한 달러를 구하지 못한다.
 
그럴때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들고 있으면 외환시장에 그 달러를 풀어서 기업이나 은행들이 달러 빚을 무사히 갚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되는 지 늘 신경을 쓴다.   
 
우리나라에 주식투자하러 들어온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자기 나라로 가져갈 때는 달러로 바꿔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구해야 한다. 원화를 달러로 바꿔주는 시장은 우리나라 밖에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언제든지 달러를 공급해줄 수 있는 든든한 정부가 있어야 우리나라로 맘 편하게 주식투자를 하러 들어올 수 있다.
 
외국인들은 원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쓸 곳이 없으므로 달러가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와 같다.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투자를 하러 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넉넉히 들고 있어야 안심하고 투자하러 들어온다.
 

 
그렇진 않다. 때로는 수출이 잘되고 우리나라로 투자하러 달러를 싸들고 오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시장에 달러가 넘칠때도 많다. 다들 달러를 풀어놓으며 원화를 구하려고 줄을 서니까 달러값(환율)은 떨어지고 원화가치는 올라간다.
 
정부는 그렇게 달러의 가격이 쌀 때(외환시장에 달러가 흔할 때) 조용히 달러를 사서 모은다. 정부가 사서 모으는 동안에는 정부의 매수 주문 때문에 달러 값이 크게 하락하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외환보유액을 늘려놓았다가 몇년 후 시장 상황이 바뀌어서 수출도 잘 안되고(그래서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들고)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빠져 나가려고 다들 달러를 구하러 외환시장으로 몰려오는 상황이 되면(그래서 달러가 귀해지고 달러 값이 비싸지면) 모아놨던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판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정부가 없으면 달러값은 쌀 때는 아주 싸지고(환율이 내려가고) 비쌀 때는 아주 비싸진다(환율이 올라간다).
 

 
환율이 이렇게 급격하게 오르내리면 우리나라에 투자하러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불안해서 투자를 못한다. 투자를 회수해 나갈 때 즈음의 환율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러-원 환율이 1달러에 1000원할 때 1억달러(1000억원)를 들고 들어온 외국인이 있다고 치자. 그 외국인은 그 1000억원을 열심히 굴려서 1500억원을 만들어서 기분좋게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데 그 시점에 달러-원 환율이 1달러에 2000원으로 올라 있다면 그 외국인이 들고 있는 1500억원은 7500만달러에 불과하다.
그 외국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2500만 달러를 손해본 셈이 된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 외국인들은 한국에 투자할 엄두를 못낸다.
 
기업들도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내리면 사업을 하기 어렵다. 수출업체는 벌어온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는데  달러-원 환율이 갑자기 내려가면(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월급도 못주는 상황이 벌어진다.
 
수입 업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어느날 환율이 갑자기 오르면(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수입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잘 안팔리게 된다.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그 상품이 잘 팔릴지 안팔릴지 불안해지고 그런 상품을 수입하긴 어려우므로 사업을 아예 시작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외환시장에는 뜨거우면 열을 식혀주고 너무 차가우면 따뜻하게 데워주는 완충작용을 하는 거래주체가 필요한데 달러값이 치솟아 오를때 달러를 내다 팔고 달러값이 막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를 덥썩 사들이는 투자자는 드물다. 시장의 안정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정부가 나서서 할 수 밖에는 없다.    
 

 
외환보유액은 외환시장에 달러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비상금으로 갖고 있는 돈이다. 갑자기 필요할 때 급하게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
 
꼭 달러로 갖고 있을 필요는 없고 유로화나 엔화 파운드화 같이 나름 돈 대접을 받는 화폐로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 달러의 형태로 보유한다.
 
그런데 미국은 갑자기 달러가 필요하면 그냥 자기네 인쇄기로 찍어내면 된다. 그러니 외환보유액이 따로 필요없다.
 
미국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가치를 인정받는 차원(또는 예전부터 기왕에 갖고 있던 건데 굳이 팔 이유도 없다는 차원)에서 순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의 금 보유량은 약 8000톤으로 세계 1위인데 그 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00억 달러 가량 된다. 이걸 외환보유액이라고 간주한다면 적지 않은 규모다.
 
유럽 국가들 역시 금 보유량은 만만치 않지만 외환보유액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쓰는 유로화가 별 불편없이 국경을 넘어도 화폐로 인정받기 때문에 필요하면 국민들 호주머니에 있는 유로화를 걷어서 쓸 수 있으니까 별도의 외환보유액이 필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외환보유액은 비상금으로 쌓기 위해 모으는 돈이기도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자기 나라 화폐가치를 낮게 유지해서 수출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일부러 외국 돈을 열심히 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리는(?) 돈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에게 유로화는 자기 나라만 쓰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특정 국가가 열심히 달러-유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서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그 나라만 수출에 유리한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달러-유로 외환시장의 규모가 커서 한 두 나라가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유로화를 쓰는 유럽의 나라들은 외환보유액이 늘어날 이유가 없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기 위해서는 원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그 원화를 조달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조폐공사에 전화해서 돈을 찍어오라고 하는 것이다. 정부니까 그게 가능하다. 멋있는 말로 바꾸면 `발권력을 동원한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그렇게 돈을 찍어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면 그 원화가 시중에 풀려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그걸 막기 위해 한국은행은 통안채(통화안정증권)라는 채권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서 시중에 풀린 현금을 다시 한국은행으로 끌어들인다.
 
돈을 찍어내지 않고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서 모은 돈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기도 한다. 이런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라고 한다.
 
현재 약 3000억달러인 외환보유액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외평채를 발행해서 생긴 돈으로 사들인 달러이고 나머지는 그냥 돈을 찍어내서 사들인 달러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돈을 찍어서 쓰더라도 그 돈을 시중에서 다시 흡수해야 하니까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기 위해 필요한 현금은 결국 시중에서 빌려서 조달하는 셈이고 이자를 내야 한다.
 
통안채 발행잔액은 약 170조원 정도이고 외평채는 작년말 기준으로 120조원이 발행됐다. 둘을 합해 정부가 약 300조원 정도의 빚을 진 것이고 그 돈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3000억 달러 가량의 외환보유액을 만들어 낸 것이다.
 
300조원의 빚이 있으니까 연간 8~9조원 가량의 이자가 나간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들고 자가용을 굴리기 위해서도 돈이 들듯이 연간 8~9조원의 이자비용 또한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기 위해 지출하는 일종의 유지비다.
 
참고로 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외평채 120조원은 국가부채로 잡히지만 통안채 170조원은 국가부채가 아니라 중앙은행 부채다. 중앙은행도 국가기관이니까 넓은 의미로 보면 국가부채가 맞지만 형식적인 국가부채 기준을 따르자면 그렇다.
 
그래서 국가부채가 문제가 될 때는 정부가 한국은행 옆구리를 찔러서 '너희들이 통안채를 좀 발행해서 외환보유액 쌓자'고 하고 한국은행은 '왜 한국은행 부채를 늘리냐 필요하면 외평채를 찍어서 쓰지'라며 물밑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통안채라는 중앙은행 부채를 따로 만들지 않고 그냥 국채를 찍어서 생긴 돈으로 외환보유액을 쌓는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계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웃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면 각자 경호원을 고용하고 기관총을 사서 집에 놔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군대를 만들어 지키듯이 외환보유고도 기업과 은행들이 유사시에 필요한 달러를 기업과 은행들보고 알아서 모으라고 하지 않고 정부가 한곳에서 쌓아 보관하는 제도다. 
 
`나에겐 보호해야 할 재산도 별로 없고 이웃나라가 침략해오면 그냥 그 나라 국민이 되면 그만`이라는 국민들이 혹시 있다면 그들에게는 군대의 유지비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다소 불합리하고 억울할수도 있다.
 
이처럼 은행이나 대기업이 국민들과 동떨어진 남남이라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논란거리가 된다. 외환보유액 유지비용 뿐만이 아니다.
 
98년 외환위기 때 은행이 대기업 등에 빌려줬다 못받고 날린 169조원 가운데 100조원은 간신히 원금만 회수했고 나머지 49조원은 결국 국민들 세금을 걷어서 채워 넣어줬다. 이런 비용도 국민들 세금을 걷어서 은행이나 대기업을 지원해준 사례다.
 
은행이나 대기업이 국민경제를 활성화해서 모든 국민이 일자리도 갖고 경제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비용 지출이 합리화될 수 있지만 은행이나 대기업이 사기업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지출이 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모든 은행과 기업들을 국유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은행과 기업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라는 요구가 나올 때 그걸 경제원리를 모르는 감성적인 목소리로 치부하기 어려운 것도 그게 기업과 은행들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간접 비용들을 실제로 치르고 있는 국민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추석 귀성열차 차표는 몇장쯤 마련해놔야 추석때 별 문제가 없을까. 이론적으로는 왕복으로 4800만장(우리나라 총 인구) 정도 있어야 완벽하다. 추석때 고향이나 지인을 찾아 기차를 타고 움직일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달러는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언젠가는 빠져나갈 달러다. 그걸 대비해서 외환보유액을 마련하려면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달러의 양만큼 쌓아놔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추석 귀성열차 수요를 예측하듯 우리나라에 뭔가 문제가 생길때 우리나라를 떠날 가능성이 있는 달러의 수량을 예측해서 그만큼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놔야 하는데 그 계산이 쉽지 않기 때문에 늘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IMF는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외채 규모에 국민들이 3개월 동안 먹고 사는데 필요한 수입품의 가격을 더한 숫자를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권하고 있고, 국제결제은행(BIS)는 거기에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3분의 1 정도를 더해야 한다고 한다(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면서 달러가 필요할 수 있으니까).
 
주식투자자금 빠져나가는 것까지 감안하면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가 그리 넉넉한 규모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린 달러 없으니까 당신들이 알아서 바꿔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런 손님들이 다신 한국을 찾지 않을테니 문제고.
 
은행이 예금을 찾으러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얼마를 현금으로 준비해놓아야 하느냐의 고민과도 비슷하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예금자들이 다 한꺼번에 찾으러 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긴 어렵다. 문제는 은행이 불안해지면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듯이 한국이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거나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빠져나가려는 달러의 수요는 더 많아진다.
 
그래서 적정 외환보유액이라는 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대는 몇만명이 적당한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게 옳은가. 이런 고민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