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들, 2차 소송도 승소…피해자 “제3자 변제 불가”(종합)

by김형환 기자
2023.12.21 13:53:30

대법 “피해자·유족에 1억~1억5000만원 지급”
“위자료청구권,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아”
반발한 일본 “극히 유감…받아들일 수 없어”
피해자 “제3자 변제안 불가…강제처분해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0년 만에 승소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일본이 “극히 유감”이라고 반응하며 한일 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과 유족이 각각 미쓰비시중공업·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2건에서 모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에 확정 판결이 내려진 소송은 총 2건이다. 한 건은 강제 동원된 고(故) 양영수씨 등 피해자들과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013년 3월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망자들에게 1억5000만원, 부상 생존자에게 1억2000만원, 생존자에게 1억원, 사망자 유족에게 2000만원이라는 배상 기준을 설정했다.

나머지 한 건은 1942년부터 1945년 사이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된 곽모씨 등 7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이다. 곽모씨 등 7명은 2014년 2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총 7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침략전쟁을 위한 전쟁물자의 생산에 원고 등을 강제로 동원하고 노무제공을 강요한 행위는 당시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앞선 1차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1인당 1억씩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핵심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여부였는데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 기업들이 주장했던 소멸시효 만료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2018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못할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즉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있고서야 법적 구제가 확실시됐기 때문에 이전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소멸시효 만료 여부를 따지는 것은 명백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승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 항소심 승소에 이어 이번 강제징용 손배소 관련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되며 한일 관계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며 “극히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가 올해 3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해 다른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위자료에 대해 한국 측 재단이 지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이미 표명했다. 거기에 따라 한국정부가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에 책임을 넘겼다.

일본 정부가 밝힌 ‘한국정부의 대응’은 지난 3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안’으로 추측된다. 다만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이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강행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를 지원해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제3자 변제안’ 등 내놓으면서 대법원 판결 취지를 훼손하는 일들을 해왔다”며 “판결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및 유족들은 일본 기업 측의 국내 재산을 강제 처분해 배상금을 받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손해배상금 지급을 거부한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재산을 강제 처분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일본 측이 항고에 재항고로 지연시키며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