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력 강화' 김정은, 김정일 '선군정치'와 다른 점은?

by김관용 기자
2021.01.12 11:01:30

北, 제8차 노동당 대회서 당 규약 개정
"국방력 강화로 남북통일 위업 달성"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대남 노선 천명
군부 힘 빼고 당 중심 국가체제 확립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북한이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국방력 강화’를 명시했다. 하지만 김정일 시대처럼 군부의 위세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당의 통제도 분명히 했다. 특히 우리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성을 국방성으로 개칭한 것도 공식 확인됐다. ‘정상국가’의 면모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제8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에 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며 당 규약 서문에 “공화국 무력을 정치 사상적으로, 군사 기술적으로 부단히 강화할 데 대한 내용을 보충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노동당은 국가에 우선하기 때문에, 노동당 규약은 북한 헌법보다 상위규범이다. 북한 헌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 규약은 1946년 8월 28일 최초로 채택된 이래 당 대회와 당 대표자회를 통해 수정·보완돼 왔다. 1956년, 1961년, 1970년, 1980년, 2010년 규정이 개정되면서 노동당 성격이 근로 대중의 정당에서 김일성 개인의 정당으로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16년에 개정된 노동당 규약에선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동지의 당, 김정일 동지의 당”임을 밝히고 있다.

이같은 당 규약에 국방력 강화를 명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핵 무력에 의한 남북통일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개정된 당규약 서문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히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립장의 반영으로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당 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던 김일성 시대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을 폐기한 것을 의미한다. 남한에서 미국을 쫓아내고 남조선 혁명을 지원해 혁명정권과 연방제 통일을 이룩한다는 기존 대남 노선을 폐기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당 규약 개정을 통해 핵과 미사일에 기반한 우월한 국방력으로 한반도 정세 안정뿐만 아니라 조국통일도 실현하겠다는 노선을 새롭게 채택했다.

정성장 윌슨센터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욱 고도화되어 갈수록 남한에 대해 더욱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사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노동신문은 개정 당 규약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6년 개정 당 규약은 “조선로동당은 선군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확립하고 선군의 기치밑에 혁명과 건설을 령도한다”고 규정했는데 이게 바뀐 것이다.



즉, 이번 당 규약은 김정일 시대의 정치방식이었던 선군정치를 버리고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전환함으로써 김정일의 통치 방식과 차별화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군이 국가의 기본이라는 바탕 아래 모든 분야에서 군대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망 이후 지속된 ‘고난의 행군’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인민경제 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하된 당의 사회통제 기능을 군 조직을 통해 보완하려는 시도였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199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최고 권력기관으로 정하고 군부의 정치 참여를 보장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지난 2016년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했다. 그러면서 국무위원회를 ‘국가주권의 최고정책적 지도기관’으로, 국무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로 규정했다. 그가 국무위원회 위원장 호칭을 갖는 이유다.

이에 더해 김정은은 이번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기존의 당 위원장 체제를 비서 체제로 5년 만에 환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총비서로 추대해 김일성과 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정 위원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는 군대를 노동계급보다 더 중시하는 ‘선군후노’의 정치방식이었다”면서 “김정은은 과거 김일성 시대처럼 군대보다 인민 대중을 더 중시하는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실제로 김정은 시대 군부는 김정일 집권기 때에 비해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당내 군사부를 ‘군정지도부’로 승격시킨 게 대표적이다.

그간 북한 노동당 군사부는 군 총정치국 위세에 밀려 군의 군사활동 통제력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군 내 당 조직을 이끄는 총정치국이 당의 지침을 받아 군에 투사하는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총정치국도 군정지도부의 검열 대상이라 군부의 힘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내 서열 1위인 조직지도부에 군부 담당 제1부부장도 두고 있어 군에 대한 당 통제력은 더욱 강화됐다.

당 정치국 위원 면면을 봐도 군부의 위상 하락은 뚜렷하다. 과거 군 총정치국장은 군부 서열 1위이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고정 멤버였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3~5인으로 구성되는 당의 최고위 정책결정기구다. 김정은 집권 초기 정치국 상무위원직에는 군부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이, 그리고 2012년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 후에는 총정치국장이 주로 상무위원으로 선출됐었다.

그러나 2017년 황병서를 끝으로 총정치국장 지위는 ‘정치국 위원’에 머무르며 상무위원에서 배제됐다. 게다가 최근 교체된 총정치국장 권영진은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선출됐지만, 계급이 별 세 개인 상장이다. 전임 김수길의 대장(별 네 개) 계급보다 낮아진 것이다. 북한군 서열 2위였던 총참모장 박정천 보다도 서열과 계급에서 밀렸다.

게다가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노동당 비서를 겸직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군부 서열 1위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북한 당 대회를 통해 인민무력성의 명칭이 국방성으로 바뀐 것도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이같은 명칭 변경은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는 물론 다른 나라들의 명칭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아버지 시대 선군정치라는 비정상적 통치 시스템에서 벗어나 북한을 당 국가(party state)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는 의미다.

지난 2019년 11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이다. (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