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2년째 0%대라는데..`먹고 마시는' 물가는 9년래 최고

by최정희 기자
2020.12.31 13:11:15

코로나19로 지표물가, 체감물가간 괴리 커져
근원물가, 21년래 최저에도..기대인플레는 안 떨어져

편의점에서 한 시민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경제 온도계’로 불리는 근원물가가 올해 0.4% 상승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5%에 불과해 2년 연속 0%대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0%대 물가상승률은 체감 물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먹고 마시는데 쓰는 돈이 늘어났고 관련 식비는 4%대 올라 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전·월세 등 집세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그로 인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후반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0%대 물가를 해석하는 데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를 기록했다. 2019년 0.4% 이후 2년 연속 0%대 물가 상승이다. 수요 측면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근원물가는 외환위기로 가계 살림이 쪼그라들었던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의 상승세를 보였다.

근원물가는 크게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전체 460개 품목 중 407개 품목으로 구성)와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농산물·축산물·수산물·가공식품 등을 제외한 317개 품목으로 구성),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 0.7%, 0.4%의 상승률을 보였다. 두 물가 지수 모두 1999년 각각 0.3%, -0.2%의 상승률을 보인 이후 가장 낮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역으로 식료품 및 에너지 부문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물가상승률은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다. 식료품 및 에너지 부문 물가 상승률은 올해 1.2% 상승했다. 작년 0.9% 하락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먹고 마시는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는 무려 4.4% 상승해 2011년(8.1%)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선식품 지수는 9.0% 올라 2010년(21.3%)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신선어개, 신선채소는 각각 7.3%, 15.3%나 급등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대두 선물은 올 들어 무려 38.2% 올랐고 옥수수는 22.4%나 올랐다. 풍부한 시중 자금과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등에 임대 공급이 줄면서 전·월세 값이 상승했다. 다만 전세, 월세는 각각 0.3%, 0.1% 올라 숫자로는 상승률이 높지 않았다.



그로 인해 0%대 물가를 체감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대 후반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물가상승률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값인 ‘물가 인식’은 12월 1.8%로 전월과 동일했다. 앞으로의 1년간의 물가상승률을 전망한 기대인플레이션율도 12월 1.8%로 석 달째 같은 값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 안정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에선 지표 물가와 체감 물가 간의 괴리를 정치하게 구분해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은은 12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출 비중이 크게 증가한 식료품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상당폭 높아진 반면 지출 비중이 감소한 음식·숙박, 여행·항공, 교육 등은 물가상승률이 대체로 마이너스로 전환되거나 큰 폭으로 둔화됐다”며 “이런 변화된 소비행태를 반영하면 체감 물가 상승률이 지표 물가보다 0.2~0.6%포인트 상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지표 물가가 떨어진 것과 달리 일반인들의 물가인식,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은 소비지출 구조 변화에 따른 체감 물가 상승이 일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들어 5월엔 물가상승률(전년동월비)이 0.3% 하락했으나 이때도 물가 인식은 1.7%를 기록했다. 현재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내 품목별 가중치는 2017년에 작성된 것이다.

한 금통위원은 12월 10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의사록에서 “물가지수의 품목별 가중치가 그동안의 소비구조 변화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통화정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품목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면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