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재도약)③실패 용납되지 않는 ''실험''

by박호식 기자
2008.04.24 16:13:25

이회장 퇴진..자율경영체제 선언
리더십, 조율기능 약화 불가피할듯
삼성의 자율 독립경영체제 안착에 재계 주목

[이데일리 박호식기자] "초유의 실험이다. 수백가지 보완책을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심만 하고 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24일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그룹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줄여야 할 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애초 삼성 내부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뺀 삼성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다"며 퇴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봤다. 외부에서도 '삼성이 이건희 회장이 없는 삼성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퇴진을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는 향후 계열사 자율경영 또는 독립경영 체제를 의미한다. 삼성으로선 그동안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험에 나서는 셈이다. '이건희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경영진'의 삼각편대를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이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새로운 실험에 대한 우려가 많다. 그동안 삼성의 화려한 성장에는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결단과 전략기획실의 기획·분석·조정 역할이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삼성의 오늘을 일군 반도체사업은 전략기획실(구조본)의 치밀한 분석과 이건희 회장의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또한 반도체나 LCD 등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데는, 고비고비마다 대규모 자금투입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스피드경영이 있었다.  
 
계열사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신수종사업 발굴 등의 과정에서 계열사간 사업중복에 따른 자금이나 인력 낭비가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이미 삼성전자와 삼성SDI간 OLED사업을 놓고 대립하고, 삼성전자와 삼성테크윈도 디지털카메라사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미래사업인 태양전지사업에 대한 계열사간 역할분담도 앞두고 있다.
 
이외 에도 글로벌 브랜드가 된 '삼성'을 통합 관리해야 하는 문제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회의라는 협의체가 있다지만, 독립경영체제하에서 이사회나 주주들에게 경영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CEO들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나 자원배분을 자율적으로 조절한다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새로운 실험, 혼란을 막아라

이건희 회장의 전격적인 발표 이후 삼성은 새로운 체제를 연착륙시킬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곤혹스런 모습이다.



삼성 경영전략실 고위 관계자는 "이젠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다"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룹내 어느 누구도 이것이 답이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한 대그룹 임원은 "삼성의 그룹문화는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 체계에 익숙해 있다"며 "이같은 의사결정 체계가 없어질 경우 여러가지 혼란과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따라서 삼성이 지금은 자율경영 체제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안정되기까지 상당기간 이를 보완할 기구를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전략기획실이 부정적인 역할이 부각돼 해제되지만, 긍정적인 역할을 이어가 줄 체계가 필요할 것이란 얘기다.
 
다른 그룹 임원은 "사업 확장기와 달리 총수의 리더십에 따른 그룹관리의 필요성은 줄어든게 사실"이라면서도 "삼성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혼선은 불가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삼성의 계열사 사장들이 많은 권한을 갖고 경영을 한다해도 계열사간 중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수빈 회장이 있다지만 그동안 대외적인 얼굴역할을 했지 실질적인 조정역할을 해보지 않았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이건희 회장이 대주주로서 큰 그림과 관련해서는 막후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며 "비단 삼성뿐 아니라 모든 기업들은 대주주가 오너이든, 투자기관이든 사업상 큰 문제나 경영정책에 대해선 사전에 대주주와 협의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이 기회에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 등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뜻한다. 그러나 삼성뿐 아니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그룹사 관계자들 조차 "지주회사가 답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주사로 전환한 그룹의 한 임원은 "지배구조의 답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지주회사가 반드시 좋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지배구조는 해당 그룹의 역사, 대주주 상황, 기업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감안해 최선책을 찾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며 "수십년 이어온 자율경영의 기업문화, 지분이 분산돼 있는 대주주 구조 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현재 많은 고민을 안고 출발점에 서 있다. 새로운 실험이 연착륙되지 않을 경우 삼성의 위기는 삼성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큰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