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땅 500평 줄 테니 전세난 해결하라”…국민청원 왜?
by강신우 기자
2020.11.26 11:01:30
종로 부암동 사유지 500여 평 무상대여
지주 김씨 “무주택자들 절망감 안타까워”
공동주택 지어도 30가구 안팎 공급 불과
LH·서울시 “처음 겪는 일…근거법 없어”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종로 땅 500평 줄 테니 반값 전세아파트 만들어 달라.”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글 하나가 화제다. 자신이 소유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 땅 1775㎡(약 537평)을 국가에 무상대여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데일리 취재 결과 청원인은 김 모씨로 확인됐다.
김씨는 본지 통화에서 “서울에 (교육행정) 강의하러 많이 올라가는데 주말농장용으로 땅을 샀다”며 “주변에 빌라가 많고 재개발 이슈가 있지만 무주택자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땅을 무상대여키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가족과도 이미 (무상대여) 논의를 끝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지난 2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아파트값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국민을 위해 종로에 반값 전세아파트를 제공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게시 글을 통해 “어떤 부서에 어떤 방법으로 제안을 해야 하는지 몰라 이 게시판에 제안한다”며 “최근 끝없이 오른 아파트값 때문에 많은 무주택자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은 서울 도심에 아파트가 많이 공급되기를 바라는데 정부에서는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없어서 난감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종로구에 있는 제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지어 전셋값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김 씨가 언급한 부지는 부암동 땅이다. 백사실 계곡 쪽으로 올라가는 백석동길 왼쪽 언덕에 있다.
국토교통부 토지이용규제정보를 보면 이 땅은 지목이 ‘전’이다. 전은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식물을 주로 재배하는 토지다. 지역은 제1종일반주거지역과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있다. 개별공시지가(2020년1월 기준)는 ㎡당 30만7400원이다. 바로 옆 빌라가 들어선 곳의 지목은 ‘대’인데 이곳 개별공시지가(206만7000원)와 비교하면 땅값 차이가 크다.
부암동 인근 M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부암동 일대 땅은 자연경관지구 등 땅 용도가 일정치 않고 빌라를 지으려고 해도 건폐율(대지건물 비율)이 60% 정도 밖에 안 나와 빌라 건축용으로 매입을 하려고 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1종일반주거지역은 건폐율은 60% 이하이며 용적률은 200% 이하, 4층 이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지목을 변경해 500여 평 땅에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최대 30가구 정도 지을 수 있는 크기라고 했다.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백석동길 일대 전경.(사진=카카오맵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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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 씨의 제안대로 국가가 사유지를 무상으로 대여받을 수 있을까. 사실상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관계 기관의 설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LH는 매년 비축토지 매입 공고를 통해 민간 사유지를 매입하고, 매입한 토지는 공공주택 건설, 도시재생 등 공공사업에 활용된다”며 “올해는 7월13일부터 8월14일까지 공고가 이미 진행됐다”고 했다.
이어 “비축토지 매입 외 지구지정이 되지 않은 사유지를 매입 또는 무상대여 받을 수 있는 근거법령은 없다”며 “지금까지 사유지를 무상 대여받아 공공임대를 한 예가 없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자체간 부지를 무상대여하는 등의 계약을 성립할 수 있지만 개인과 국가간, 소유권 이전도 아니고 무상대여 계약을 맺는 다는 것은 생소한 경우이고 처음 듣는 일”이라며 “법적 근거가 없어 그렇게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부암동 일대 토지이용규제 도면.(사진=국토교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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