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소환에 기업들 불안감 증폭…인사·사업계획 차질 빚나
by최선 기자
2016.11.13 17:55:52
연말 정기인사 늦어질 가능성↑ 사업계획 차질까지 연쇄 영향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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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선 김혜미 임성영 기자] 검찰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총수 7명을 모두 소환 조사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망을 재계 전반으로 확대하자 기업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총수 사면 요청,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 최씨 회사에 대한 자금 모금 등 다양한 의혹들이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로 엮이고 있어 부담감이 적지 않다.
특히 기업들은 연말 정기 인사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등 굵직한 경영 스케줄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인 기업 총수들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주요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13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 오후부터 이날 새벽까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협의회 의장,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005930) 대외담당 사장 등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어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002320)그룹 회장을 연이어 소환했다.
이번 수사는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예고한 검찰이 조사를 앞두고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 지 확인하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대기업 총수 중 7명에 대해 비공개 면담을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청년희망펀드 지원 등 비선실세 최씨나 그 측근을 위한 자금 모금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검찰은 짐작하고 있다.
이처럼 검찰이 재계 수사에 대한 수사 속도를 올리자 기업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경유착 의혹 관련 검찰의 수사는 예상됐던 부분이지만 이토록 빠르게 진행될 지는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심각해진 경기불황, 제품 결함, 파업 등 각종 내우(內憂)에 시달렸던 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라는 외환(外患)까지 복병으로 맞은 것이다.
삼성그룹은 인사 일정부터 변수가 생길 전망이다. 올해는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 선임-회장직 승계-사장단 인사 수순을 거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검찰의 수사선에 오르면서 첫단추를 꿸 시기가 요원하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월초 이사회에서 권오현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유지키로 한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사장단 인사는 불과 보름여 남은 상황이지만 검찰 조사 관문을 넘은 뒤에야 대대적인 인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타II 엔진결함, 파업 등 힘든 한 해를 겪은 현대차(005380)는 10년만에 총수가 검찰에 소환되면서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현대차는 이번 검찰 조사는 사실 확인을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사업에 영향을 줄 사안은 아니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대차 안팎에서도 벌써부터 인사 기류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품질논란과 내수 점유율 부진 등으로 12월 정기 인사가 큰폭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외풍에 의한 혼란 최소화를 위해 인사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사철에 접어들면 관련해서 무성한 얘기들이 전해진다”며 “인사라는게 원래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대부분 내년 사업계획에 맞춰 연말 정기 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실시한다. 인사가 당초 계획과 달리 진행되거나 늦어진다면 그만큼 사업계획 수립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
올해 ‘혁신’ 구호를 외치며 비상경영에 돌입한 SK(034730)그룹, 한화(000880)그룹도 최순실 게이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SK그룹의 경우 워룸(비상상황실) 설치까지 지시할 정도로 경영역량 강화를 추진하는 중이어서 대대적인 연말 인사와 사업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선제적인 사장단 인사를 실시해 새로 임명된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되면서 사내 민심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들 회사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외부환경 변화에 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친 상황이어서 경영계획에 차질을 빚게 될 지 우려하고 있다”며 “회사 내부가 외부 국민정서만큼이나 어수선한 상황”이라고 했다.
롯데그룹, CJ(001040)그룹, LG(003550)그룹 등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검찰 조사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쇄신안까지 발표했지만 권력형 게이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CJ그룹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K-컬처밸리 사업에 최씨의 최측근인 차은택씨가 연루되면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재계 관계자는 “내부는 더욱 긴장 상태다. 언제 우리 쪽으로 불똥이 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정기 인사계획이나 사업 활동을 펼치는 중에 최순실 사태에 그룹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