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인수금융맨 "돈 쓰실분 없나요"

by오상용 기자
2010.09.15 15:36:34

대형 딜 그림의 떡.."외국계에 밀리고 회사채에 넘어지고"

마켓뉴스 | 이 기사는 09월 15일 15시 06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뉴스`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변변한 일감이 없다는 시중은행 인수금융 담당자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올들어 몇 건의 대형 딜(Deal)이 성사됐지만 은행 돈을 끌어다 인수합병(M&A)에 나서는 사례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부채캐피탈마켓(DCM) 여건이 개선되면서 은행 빚을 내기 보다는 자금조달 시장에서 직접 회사채를 찍어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은행권 인수금융팀은 M&A에 나서는 인수자측에 인수대금을 주선·대출해주고 자금모집 주관 수수료와 이자수입을 얻는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 하반기중 이뤄진 대형 M&A중 시중은행의 인수금융 대출이 끼어든 딜은 현대중공업의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 정도다.

현대중공업이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로부터 현대오일뱅크 주식 70%(1억7155만주)를 넘겨받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총 2조5000억원 가량. 이 가운데 1조원은 기업어음을 통해 조달했고 나머지 1조5000억원은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우리은행, 수협 등에서 차입했다. A은행 관계자는 "이 마저도 올들어 신규 발굴한 사업건이라기 보다는 이미 지난해부터 은행권이 추진해 왔던 건"이라고 말했다.



해외 M&A시장에선 호남석유화학의 말레이시아 타이탄 인수와 한화케미칼의 솔라펀 인수가 성사됐지만 시중은행 인수금융팀에 일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업체 타이탄을 1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호남석유 화학의 경우 국내외 은행들을 상대로 대출금리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계열이라는 높은 신용도와 회사채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덕에 은행 돈 대신 회사채를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억7000만달러가 투입되는 한화케미칼의 솔라펀 인수 역시 일찌감치 수출입은행 정책자금을 이용하기로 결정돼 시중은행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포스코가 3조3700억원짜리 대형매물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지만 돈 많고 신용도 좋은 포스코이다 보니 시중은행 인수금융팀은 헛물만 켰다.


B은행의 인수금융 담당자는 "우량 대기업의 경우 워낙 낮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어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해외 M&A의 경우 시중은행의 조달금리가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금리경쟁에서 외국계 은행을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최근에는 회사채 시장 금리도 낮아져 신용도가 높은 기업은 아예 직접 자금 조달에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연말까지 이같은 양상이 지속될 것 같다"며 "올해 농사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인수금융 건이 줄다 보니 은행들은 기존 인수금융 대출의 리파이낸싱에 그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오비맥주 인수자인 KKR펀드 등에 대한 은행권의 1조4300억 리파이낸싱과 실트론 지분 49%를 인수했던 보고펀드 등에 대한 2400억원 리파이낸싱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수익기반 확대를 위해 4시간여 마라톤 회의를 벌였던 C은행 투자금융부 관계자 역시 "이같은 상황이 고착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는 "과거 은행권 인수금융 대출 동향을 살펴보면 사모펀드(PEF)들의 M&A가 활발했을 때 업황이 좋았다"면서 "올해는 PEF들도 관망만 하고 있어 은행권의 인수금융 건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건설(000720)과 대선주조 등의 매각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자금력이 탄탄한 현대차그룹이나 롯데그룹에 넘어갈 경우 인수금융 수요는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