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원 횡령' 경남은행 직원 징역 35년…"금융 시스템 무너져"

by최오현 기자
2024.08.09 15:10:08

14년간 3089억 횡령 혐의…역대 최대 규모
法 "금융시장 악영향 끼져 중형 불가피"
실질 횡령 이익 290억 몰수 추징 명령
공범 황 씨도 징역 10년 선고·11억 몰수키도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국내 은행 횡령 사고 중 가장 큰 규모인 3000억원대 자금을 빼돌린 전 BNK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씨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오세용)는 9일 오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이는 법정 양형기준에 따른 최대 권고형인 16년 6개월보다 2배 이상 무거운 중형이다. 법원은 아울러 약 159억원 추징과 130억원 상당의 금괴와 상품권 등을 경남은행에 돌려주라고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장기간 반복적으로 횡령을 저질렀고 금융기관 종사자의 신뢰를 역으로 이용하고 시스템을 악용했다”며 “사법이 정하는 금액보다 훨씬 뛰어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횡령했고 금융시장 등에 끼친 악영향을 고려하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씨가) 출금전표, 계좌거래 신청서, 대출실행 요청서 등을 적극적으로 위조하고 차명계좌와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이용하고 또 부하 직원까지 이에 동원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횡령한 돈으로 주식 투자와 횡령액 돌려막기 등에 사용해 범행 동기에도 참작할 사유가 전혀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또 “전체 금융기관 종사자 신뢰에 악영향 끼친 데다가 금융 시스템이 무너져 이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동 피고인들까지 몰수 추징에도 불구하고 피해 은행의 손해가 전부 회복될 가능성이 적고, 은행은 대외적 신뢰도 하락 등까지 고려하면 모든 피해 복구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약 30년간 경남은행에 재직하면서 지난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4년간 308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는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씨는 15년 동안 한 부서에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업무를 담당하면서 출금전표 등을 위조로 꾸며 거래하면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은행이 실제 손실을 입은 금액은 592억원 정도로, 나머지 금액은 이씨가 횡령한 금액을 다시 메꾸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손실을 입은 금액에서 상당 부분은 수사기관에 의해 압수됐고, 실제 이씨가 취득한 이득은 약 290억원에 달한다.

이와 더불어 재판부는 함께 범행을 공모한 이씨의 친구이자 한국투자증권 직원이던 황모씨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분배받은 범죄 수익 12억원 중 11억35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그는 횡령과 함께 범행에 이용된 컴퓨터를 내연녀 최씨에 포맷하라고 지시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받았다. 실제 컴퓨터 포맷을 행한 내연녀 최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법원은 이씨의 범죄 수익을 함께 은닉한 혐의로 이씨의 아내와 친형 등에게도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이들은 수사가 시작되자 금괴, 상품권, 수표 등으로 자금을 세탁하고 차명으로 계약한 오피스텔 3곳을 포함해 집 안의 김치통, 가방 등 이를 곳곳에 숨겨놓았다가 모두 발각됐다. 법원은 이씨의 횡령금을 은닉한 배우자, 모친, 형제자매 등으로부터는 약 32억원 상당을 별도로 몰수·추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