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기술탈취' 논란속 어느 中企의 하소연
by정태선 기자
2017.12.05 12:17:14
중소기업 기술탈취, 최근 5년간 3000억원 넘어
현대차 버티기..비제이씨 국민청원 운동까지 나서
오엔씨엔지니어링 "현대차 기술탈취로 400억 절감효과"
| (왼쪽부터)최용설 비제이씨 대표와 박재국 오엔씨엔지니어링 대표가 여의도 중기중앙회 기자실에서 현대차의 기술탈취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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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7년간 소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사기관이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대기업들에게 기술을 탈취 당한 중소기업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들어 중소기업의 기술을 뺏는 대기업들에게 철퇴를 내리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민사소송 등의 절차를 밟아 해결하는데는 최소 7년 이상 소요되는 등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정화기술 전문업체 비제이씨 최용설 대표는 5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대기업·대형로펌을 상대로 대법원까지의 긴 소송기간을 버티기 힘들다”며 “중소기업을 위해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해 초기에 조사하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승리한 중소기업 비제이씨는 지난달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글까지 올렸다. 현대차가 ‘재심 청구’ 카드를 꺼내들며 시간 끌기 작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최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과 맞물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지만, 중소기업의 피해는 소송시간과 비례해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제이씨는 2004년부터 자동차 페인트 도장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유기화합물·악취를 정화하는 신기술을 개발해 현대차 울산공장에 납품해 온 업체다. 2006년 8월에는 현대차와 공동으로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지만 2015년 1월 현대차는 경북대와 공동으로 새로운 미생물제 기술을 개발했다며 특허를 출원한 후 비제이씨에 납품계약 중단을 통보했다.
이후 비제이씨는 2016년 4월 현대차·경북대를 상대로 ‘특허등록무효심판청구’를 제기해 지난달 21일 특허등록 무효 결정을 받아냈다. 특허심판원은 “현대차와 경북대가 공동으로 등록한 특허의 10개 항 모두에 진보성이 없으며, 특허구성과 균주를 비롯한 특허의 효과까지 기존 특허와 동일하다”고 심결했다. 중소기업이 승리한 이례적인 결과다. 하지만 현대차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혀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특허무효 사건은 특허심판원(1심)→특허법원(2심)→대법원(최종심) 순으로 진행된다. 비제이씨 측은 대법원 판결까지 7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기부의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도 현대차를 상대로 비제이씨에 3억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현대차는 거부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기술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은 해당 기술이 현대차와 비제이씨의 공동 특허이기 때문”이라며 “비제이씨로부터 탈취한 자료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와 경북대가 공동으로 출원한 특허에 대해 특허심판원이 내린 1심 결과는 비제이씨의 기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특허무효 결과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 현대차가 오엔씨엔지니어링에 기술 설명을 요구한 자료.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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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생산용 로봇에 들어가는 전동실린더를 개발하는 오엔씨엔지니어링도 현대차와 기술분쟁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3년부터 제품 개발을 시작한 이 업체는 2014년 현대차 최종 납품을 눈앞에 둔 기술설명회 과정에서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 요구에 따라 제품을 분해한 뒤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기술설명회까지 열었다. 거래 과정에서 현대차는 시제품과 도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얼마 뒤 오엔씨는 자사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스웨덴회사 SKF가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재국 오엔씨엔지니어링 대표는 “현대차는 다국적 기업에 오엔씨엔지니어링의 기술을 넘기고 그 회사를 통해 납품을 받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들 통해 현대차 입장에선 400억원 이상 원가를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오엔씨엔지니어링이 주장하는 기술탈취 피해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돼 조사중이며 결과는 13일에 나올 예정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빼앗겨도 현실적으로는 구제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도급법에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정한 조항이 있지만 이 법으로 보호를 받으려면 두 기업이 위탁계약을 체결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위탁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오엔씨는 해당사항이 없다. 따라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정만 변호사는 “계약 체결 전이더라도 대기업 요청에 따라 중소기업이 기술자료를 제공한 경우 상호 간에 비밀유지협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도급법 2조에 명시된 기술자료의 정의도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에는 걸림돌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기술자료란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자료다. 계약 과정에서 대기업이 요구한 자료를 건네줬다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으니 기술자료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위민 손보인 변호사는 “현실적으로는 대기업 요구에 따라 기술자료를 제공하거나 자발적으로 공개하기 마련인데, 이는 ‘비밀’이라는 요건과 상충된다”며 “이처럼 엄격한 조항이 중소기업 여건에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특허무효심판에서 중소기업 패소율은 작년 71.9%, 올해 1~7월은 93.3%달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영세한 중소기업 입장에선 법적으로 이기더라도 이런 싸움을 길게 이끌어 갈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기술탈취 피해는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 사건으로 분류된다.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는 “기술탈취는 절도·상해와 같은 형사 사건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기술탈취 때문에 중소기업이 신고한 피해금액이 최근 5년간 3000억원을 넘어섰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총 527개사로 기술유출 526건이 발생했으며 피해신고액이 3063억6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