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지방공기업)①`검은 백조`는 오는가

by오상용 기자
2010.07.21 15:51:00

지방공사채 눈덩이..3년새 7배로 급증
"시장은 이미 옥석가리는중..신용등급 차별화 필요"
신평사 보완책 마련 나서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전례가 없던 일이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정치적 해석을 떠나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채권시장과 크레딧시장은 적잖이 당황했고 전에 없던 질문을 던지는 이도 나타났다. `지방채 나아가 지방공기업이 발행한 지방공사채는 디폴트의 무풍지대인가, 자원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지금의 지방공사채 시장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지방공기업이 망한적 없다`는 경험칙과 `설마 망하겠는가`라는 현실론에 안주하기엔 나라안팎의 여건도 녹록치 않다. 민간에서 시작된 부실이 공공부문으로 전이되는 속도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경제권에서 가팔라지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해부와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 자료 : 예탁결제원. 지방공기업경영정보공개시스템상 해당되는 기업만 대상. 등록발행된 채권에 대한 발행잔액이므로 실물발행분을 포함한 발행잔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등록잔액이므로 미상환잔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
2005년 이후 안정적인 감소세를 보이던 지방공사채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새정부 들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후퇴에 맞서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 역시 경기부양의 총대를 나누어 졌기 때문이다. 단기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기 위해 각 시도에 건설·토목 현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느라 지방공기업의 사채발행도 봇물을 이뤘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7년 2조5600억원에 불과했던 지방공사채의 발행잔액(등록발행 기준)은 이듬해 4조400억원으로 늘어난 뒤 올 6월말 현재 16조9800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새 지방공기업의 사채발행 잔액이 거의 7배로 불어난 것이다.

부채의 속성상 한번 불어난 빚은 쉽게 줄지 않는다. 3~5년 장기 계획 아래 이뤄지는 개발사업이 적지 않은데다, 부동산 경기악화로 개발사업에 따른 현금유입이 약화되고 있어 지방공기업의 채무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간 지방공사채는 별 무리없이 소화됐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고조된 안전자산 선호심리와 수익률 측면에서 국채 보다 매력적이라는 인식 덕분이다. 특히 지자체가 설립한 공기업인 만큼 상환능력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투자자들의 거부감도 적었다.
 
그러나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이같은 공감대에 파열구를 냈다. 파산법상 지자체의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이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성립되지 않지만 지자체가 설립한 지방공기업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실화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지방공기업의 경우 디폴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방공기업법상의 채무 대지급 조항은 `지자체가 지방공사채의 원리금 상환을 보증할 수 있다`라고만 명시돼 있을뿐 `보증한다`는 의무조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방공기업이 유동성위기에 직면하고 관할 지자체마저 열악한 재정으로 빈사상태에 놓일 경우 지방공사채의 상환안전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지방공기업 마다 재무사정이 다르고 모기업뻘인 관할 지자체의 재정건전성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지방공기업에 부여된 신용등급은 천편일률이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17개 주요 지방공기업에 대해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긴 신용등급은 AA+ 아니면 AAA다. 
 

회사의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부채비율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가 뒤를 받쳐 줄 수 있다는 게 높은 평점의 주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이 문제를 투자자 보호 측면 뿐만 아니라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김동열 연구위원은 "지방공기업을 동원한 선심성 사업과 난개발, 이에 따른 공공부채 증가를 제어하기 위해선 지방공사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더 차별화해 시장의 냉엄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신용평정이 지방의 무분별한 재원낭비를 방조하고 있다"며 "시스템적인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SK증권의 이하정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지방공기업의 신용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시장은 이미 옥석가리기에 돌입한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방공기업에 대한 등급평정이 더 정밀해질 경우 순기능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용평가업계 내에서도 보완책 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정부의 재정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신용등급과 이를 배제한 지방공기업 자체의 재무상황만을 고려한 개별등급(Individual rating)을 따로 산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