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르포]나만의 피서법..찜질방·카페 북적
by정태선 기자
2012.08.07 17:10:00
| 찜질방 드래곤힐스파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있는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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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태선 기자]“너무 더워서 저녁밥을 하자고 가스레인지를 켤 염두가 나지 않아요”
서울 대방동에 사는 전현정(38)씨는 퇴근 이후, 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침대 옆 협탁에 아로마 효과를 위해 놓아 둔 고급 수제 비누가 순두부 처럼 녹아내린 것. 연일 떠들어대는 폭염이 실감났고, 저녁 밥맛은 싹 달아났다.
궁리 끝에 찜질방으로 직행~.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대형 찜질방 드래곤힐스파. 저녁 8시쯤 만난 전씨는 “폭염 때문에 입맛도 없고 월요일부터 지치고 힘들어 남편에게 찜질방 데이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방학 중인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서둘러 찜질방으로 먼저 왔고, 뒤늦게 김포 직장에서 합류한 남편 김현배(43)씨까지 세식구가 나란히 12도쯤 되는 얼음방에 앉아 있으니 ‘더위사냥’에 성공한 듯 하다.
전씨는 “퇴근이후 아침까지 에어콘을 가동을 해도 별로 시원하지 않아 요즘은 하루하루 집에서 저녁나기가 두렵다”며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찜질방이 최근 같은 더위엔 제격”이라고 말한다.
찜질방 옥상에 마련된 스낵코너에서 치킨과 맥주, 아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주문해 끼니를 떼우고, 500인치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올림픽 경기 중계까지 보는 것은 덤. 찜통 더위에 저절로 지갑이 열린다.
| “한국 더위 스페인보다 매섭네요. 찜질방에서 피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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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온 떼이요(35)씨도 한국의 더위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스페인도 덥지만 습하지 않아 그늘에 가면 견딜만 해요. 한국 무더위는 진짜 매섭네요” 친구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이날 서울 관광, 경복궁-남산한옥마을-남대문시장 코스를 한국인 친구의 재촉으로 조금씩 앞당기고, 재빨리 찜질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국사람처럼 소나무 향기가 나는 한증막에 들어갔다가 얼음방으로 직행하니, 한국의 ‘이열치열’이 뭔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레이아 공주처럼 수건을 머리에 쓰고 왔다갔다하니까 한국 피서법이 너무 재밌고, 더위가 사랑스럽네요”
드래곤힐스파 매점의 한 직원은 “지난 일요일에만 4000여명의 손님이 다녀 갔다”고 말했다. 이어 “예년에 비해 손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저녁 8시부터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손님은 많이 늘었다”며 “덩달아 식혜나 냉커피 등 각종 음료, 간단한 식사류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리를 옮겨 자정 무렵 홍대 근처를 돌아봤다. 무더위를 피해 인근 원룸에서 빠져 나온 학생들과 주민들로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골목은 손님들로 불야성. 특히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카페를 중심으로 학생들로 넘쳐났다.
|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탐앤탐스 신촌로터리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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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온 아그네스(33)씨는 “작년 여름에 살던 사당동 인근 반지하 원룸에서는 폭우로 물난리를 만나서 동사무소에서 피해보상까지 받았고, 너무 겁이나서 홍대 근처 고층아파트로 옮겼왔는데 올해는 무더위가 괴롭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녁에도 외부는 35도쯤 되지만 집안은 40도 가까이 올라가 있어서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저녁을 간단히 먹고 9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인근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즐기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샤워를 3번 넘게 하지만 선풍기 한대로 더위를 참는 것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최근 저녁때만 되면 방문하는 그를 알아보고 커피숍에서는 커피를 리필해 주거나 쿠키까지 무료로 챙겨줘서 주인과 친구가 됐다.
종일 이어지는 더위를 식히고,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에 실제로 24시간 운영하고 있는 커피전문점의 매출도 높아졌다고 한다. 커피 전문점 탐앤탐스에 따르면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오후 2시~4시 사이의 7월 매출은 6월 대비 5% 늘었고, 열대야가 한창인 새벽 2시~6시 사이의 매출은 전월 대비 3% 올랐다. 특히 여름 시즌메뉴의 매출이 눈에 띄게 상승해 7월 한달 간 팥빙수, 컵빙수 등 빙수 제품군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6월 대비 78%나 급증했고, 8월 들어 1일 빙수 판매량은 7월 평균보다 54% 많아졌다.
이제훈 탐앤탐스 마케팅기획팀 팀장은 “유례없는 폭염으로 한낮의 무더위와 새벽 열대야가 절정인 시간에 고객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간편하게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시즌메뉴인 1인용 컵빙수 ‘빙수치노’ 판매 비중이 빙수제품군 판매의 30%에 달하는 등 고객들이 실내외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노력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카페베네 역시 빙수류는 5월 대비 6월달 30%이상 판매량이 늘었고, 8월 무더위에는 5월대비 빙수 판매량이 최고 3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