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채권시장이 증협에게

by황은재 기자
2006.06.26 17:04:55

[이데일리 황은재기자]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16강행 실패로 월드컵 열기는 한풀 꺾였습니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는 월드컵에 비교할 만한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해묵은 논쟁이기는 하지만 `채권 장내거래 문제`를 놓고 그동안 밀리기만 했던 증권업협회와 증권업계가 정부와 증권선물거래소에 본격적인 반격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7월 채권시장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되는 `장내거래 의무화` 논쟁을 예감하며 채권외환팀의 황은재 기자가 증권업협회에 한마디 하고 싶답니다.


채권 장내거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정부와 증권선물거래소 등이 고집스럽게 `장내거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고, 증권업계와 채권시장 곳곳에서는 이런 당국의 방침에 끌려가면서도 불만과 반발을 키워 왔던 해 묶은 논쟁입니다. 일부 교수들은 장내거래가 활성화돼야 국내 채권시장이 선진화된다고 주장하고, 한국금융연구원 같은 곳에서는 실효성도 없는 장내거래 의무화를 집어 치우라고 반박하는 등 전문가들도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누굴 위한 채권거래 장내화인지?

갈등이 표출될 때마다 유야무야되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전면전으로 갈 경우 채권시장의 파행은 불보듯 한 것이고요. 이미 장내거래 수수료 문제로 채권시장과 증권예탁결제원, 증권선물거래소가 한 바탕 전쟁을 치뤘습니다. 결과는 임시 방편 땜질 처방으로 끝났죠. (관련기사) 채권장내거래 파행오나

장내거래 활성화에 가장 열심인 곳은 물론 증권선물거래소입니다. 반면 증권사들의 자율 규제 기관인 증권업협회는 정반대로 장외거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채권시장은 거래소보다 증권업협회에 더 불만인 듯 싶습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동지`인데도 말입니다. "장외거래 활성화를 위해 증권업협회가 도대체 뭐 한게 있느냐"는 게 시장의 불만입니다. 

증권업협회가 추구하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3월 증권업협회(이하 협회)는 프리보드관리부 산하에 있던 채권시장실을 별도의 채권시장실로 독립 승격시키고 부서 책임자도 팀장급에서 부장급으로 격상했습니다. 주식시장에 치중했던 협회가 `장외 채권거래 시장 챙기기`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당시 증권업협회 채권시장실장으로 취임한 성인모 실장은 "장외시장의 효율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정부 당국과 증권선물거래소, 금융감독원의 장내거래 의무화 추진에 대항하기 위한 증협의 발걸음에 시장도 기대반, 의심반으로 지켜봤습니다.

이후, 애초의 의욕만큼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부터 발표중인 채권시장지표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습니다. 3개월이란 짧은 시간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는 `시장이 피 흘려 싸울 때 증협이 뭘 한 것이 있냐`고 지적합니다.

한 증권사 채권영업부장은 "증권사들의 이익집단인 협회가 그동안 채권 장내거래 의무환 문제에 대해 너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며 "증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증권사의 분담금으로 월급만 챙겨가는 곳이 증협이라고 노골적인 불만까지 터트렸습니다. 증협이 아무 역할도 해주지 못하니, 시장은 정부 당국과 거래소의 장내거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전전긍긍하며 숨죽인 채 지켜봐야 했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바로 잡겠다”-증권업협회



엎드릴 만큼 엎드린 것일까요? 시장 말대로 월급받은 만큼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요? 회원사인 증권사와 채권시장의 비난에 증협이 그동안 갈아왔던 칼을 빼들 기세입니다. 정부 당국과 증권거래소의 `말도 안 되는 주장`(증협 관점) 직접 반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채권 장내거래 논쟁을 둘러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증권업협회는 다음달 6일에 채권시장 전문가와 관계자들 약 200여명을 초청해 채권 장내 거래 의무화의 문제점 대한 주제발표를 계획 중입이라고 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증협은 채권 장외 거래 문제로 제기된 거래 시스템의 비효율성 문제 등에 대한 오해를 잠재우겠다고 합니다.

성인모 실장은 “국채거래 집중화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보다 효율적인 채권 장외거래 시스템을 위한 방안 모색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거래소의 장내거래 의무화 문제를 공론화 시키겠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성 실장은 이어 "그동안 증협이 채권장내거래 문제에 대해 너무 소흘히 해왔다"며 "이제는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금감원의 채권시장제도관련 TFT에서도 채권시장 발전에 대해 좀 더 긴 안목을 갖기로 하고 논의를 유보한 것으로 알려져 이제부터 장내거래 문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채전문딜러(PD) 가운데도 장내거래 의무화에 반발하고 있는 곳이 많아 수 싸움에서는 증협이 다소 우세해 보입니다. 지난 장내거래 결제수수료 논쟁에서도 PD들은 수수료 부담을 이유로 장내거래를 전면 중단하고 장외거래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장내거래가 매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증권업협회의 행보가 너무 늦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동안의 서운함 때문일까요?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말없이 있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점이 마땅치 않은 기색입니다. 혹시 겉모양만 `척`하는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강합니다.

증권사 채권관계자는 "증권업협회가 보신주의로 일관하면서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 장내거래 문제에서도 이제서야 나서는 게 유감"이라며 "세미나를 통해 최소한 장내거래 문제에 대해 논의의 선상에라도 올려 놓았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 한마디 더 합니다.  "늦었지만 하려면 똑바로 하라"고 말입니다. 이번 7월 세미나가 그동안에 나왔던 장내거래 문제점 지적 보고서 수준에 머무른다면 아마 채권시장은 다시 협회를 외면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경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