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유죄…"인격권 훼손 사적제재"(종합)
by백주아 기자
2024.01.04 12:33:30
1심, 국민참여 배심원 전원 무죄 "공익 위한 것"
뒤집힌 2심 "얼굴 사진 공개, 공익에 부합 의문"
대법 "사적제재 허용시 개인사생활·인격권 침해"
유튜브서 범죄자 신상 공개 ''처벌 불가피'' 전망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적법 절차 없이 일반인에게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사적제재’ 수단에 가깝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 신상을 무단 공개하는 행위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운영됐던 배드파더스 사이트.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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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한 구본창(61)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보류했다가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구 씨는 지난 2019년 5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은 지난 2020년 1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전원 무죄 평결을 받고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그러나 구 씨의 행위가 ‘사적 제재’로서 현행법에 어긋난다며 유죄로 판단을 1심을 뒤집었다. 신원을 특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얼굴 사진, 직장명 등이 무분별하게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다만 범행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며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분명한 사실을 공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형법 307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의 위헌 여부와 관련해 2021년 2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정보의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파급 효과도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구씨가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배드파더스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성립 요건인 ‘비방 목적’이 인정된다고 보고 이날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에 대해 “결과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로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피해자들은 공적 인물이라거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을 수인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며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최근 유튜버 채널 등을 통한 개인 신상공개와 관련한 ‘사적제재’ 비판과 관련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 해도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불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모 유튜브 채널은 배우 고(故) 이선균 씨를 협박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여성의 얼굴 사진과 함께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민간인이 개인 신상을 공개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개된 정보가 허위사실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최승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현재 법제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이 존재하는 만큼 기존 법리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은 판단”이라며 “사적 영역의 특정 주제가 특정 시기에 사회적 관심이 몰린다고 해도 그것이 공적 영역으로 전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