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처럼 사람이 5∼6겹으로”…지옥같던 현장 속 ‘긴박한 6시간’
by조민정 기자
2022.10.30 17:32:26
세월호 이후 대규모 인명피해…사망자 153명
오후 5시부터 인파…뒤에서 밀면서 압사 사고
경찰 출동에도 즉시 구조 불가…골든타임 놓쳐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너무 충격적인 핼러윈 파티였어요…사고 발생 전부터 누가 깔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어요.”
‘서양 명절’ 핼러윈 데이를 맞이해 지난 29일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인파에 짓눌려 153명이 압사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발생한 가장 큰 인명피해이며, 피해자 대부분이 10~20대로 젊은 층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겼다. 사고 현장은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하는 소방·경찰 관계자와 어떻게든 피해자의 의식을 돌아오게 하려는 지인들의 절규로 가득했다. 최초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 15분부터 실종자 접수처가 마련된 30일 오전 4시30분까지 긴박했던 6시간은 모두에게 악몽으로 남았다.
| 29일 오후 8시 30분쯤 핼러윈 축제를 맞이해 10만명이 모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의 모습이다. 거리 인파로 술집에서 임시로 설치한 부스가 흔들리고 있다.(영상=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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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10시 15분 소방당국은 “10여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수십 건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압사 사고가 난 지점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해밀톤 호텔 옆 내리막길로 폭 3.2m에 불과한 좁은 골목이다. 이날 이태원에만 10만명 인파가 모이면서 도로에 수십 명이 쓰러지자 앞사람들이 아래에 깔리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태원역 해밀톤 호텔 뒤편 거리는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이동 자체가 어려웠다. 거리는 술집, 식당,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이들로 뒤엉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골목이 있는 삼거리는 거리로 진입하는 이들과 빠져나가는 인파로 아예 정체된 상태로 서 있었다.
사고 조짐은 오후 9시께부터 보였다.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앞사람을 미는 인원이 점점 늘어났고 골목 인파는 하나의 물결처럼 움직였다. 핼러윈 기간에 처음으로 이태원에 왔다는 전모(27)씨는 “사람들이 떠밀릴 때마다 함성과 비명이 들리는데 웃는 사람들도 있어서 놀이공원인 줄 알았다”며 “콘서트 스탠딩 갔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인파 속 남성 A씨는 “지금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며 숨을 바삐 쉬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이 떠밀리는 강도가 강해지고 횟수도 빈번해지면서 1층 영업가게에서 임시로 만든 부스까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설치한 가벽과 천막도 힘없이 밀리면서 거리에 인접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테이블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술집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며 기다리던 사람들은 인파에 떠밀려 가게 안쪽까지 들어와 혼잡한 상황이 벌어졌다.
|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거리에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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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바로 현장에 도착했지만 앞사람들이 깔린 줄 모르고 계속해서 미는 사람들로 인해 구조가 쉽지 않았다. 교통경찰이 다른 골목으로 우회해 뒤쪽 인파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피해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심폐소생술(CPR)은 평평한 곳에서 해야 하는데 수 십 명이 뒤엉킨 상황에서 응급처치가 이뤄져 골든타임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사건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최초 신고 40분 후 군부대 수방사에서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하며 피해자들이 넓게 퍼져 눕혀졌고, 실신한 피해자의 일행은 “도와주세요, 비켜주세요”라고 외치며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병원 이송을 하기 위해 피해자의 팔다리를 남성 4명이 붙잡고 뛰어가기도 했다.
이에 오후 11시 30분쯤 사람들은 도로 가장자리에서 서로 손을 붙잡으며 인간 벽을 만들어 경로를 확보했고, 일부 남성들은 사고 현장으로 뛰어가 피해자를 옮기는데 주력했다. 부상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일행에 기대 이동했고 땀에 흠뻑 젖은 남성 피해자는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서 있었다.
30일 오후 8시 기준 사망자는 153명, 부상자는 133명이다. 사망자 중 여성은 97명, 남성은 56명으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여성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사상자 가운데 사망자는 25명으로 국적은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노르웨이 등이다.
현재까지 시신은 일산 동국대병원(20명)과 이대목동병원(7명), 성빈센트병원(7명), 평택제일장례식장(7명), 강동 경희대병원(6명), 보라매병원(6명), 삼육서울병원(6명), 성남중앙병원(6명) 등 39군데 영안실로 나뉘어 안치됐다.
| 29일 오후 10시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사고 발생 지점.(그래픽=문승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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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4시 30분 한남동 주민센터에 실종자 접수처가 마련되면서 현장 수색은 대부분 마무리됐지만 ‘이태원 참사’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종자 신고접수 상황실을 설치한 서울시는 방문과 전화를 통해 실종자 신고를 받고 있으며 오후 5시 기준 접수된 실종 신고 건수는 누적 4024건(전화 3932건, 방문 92건)이다.
정부는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서울시는 오는 31일 오전부터 서울광장과 이태원 광장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한다. 사망자 유가족별 전담공무원을 배치해 장례 대책을 검토 중이며 화장시설 가동횟수도 일 최대 60건 증대할 계획이다. 서울시 주최 행사는 전면 취소하고 축제성 행사는 축소 등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한편 경찰은 신고자나 목격자, 주변 업소 관계자들을 상대로 이번 사고의 발단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담당 지방자치단체가 사전에 사고 예방 조치를 충실히 했는지도 따질 계획이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 등에 엄정 대응 조치도 시사했다. 경찰청은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행위와 개인정보 유출행위 등 온라인상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