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테크 분식회계 왜 터졌나

by이진우 기자
2005.09.29 18:26:09

2000년 유상증자 때 `거품`주식담보 대출이 화근
주가 떨어지자 금융기관이 `칼` 회수
장흥순 회장 분식회계 시인..사법적 판단 주목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지난 9일 터보테크에 700억원의 분식회계설이 터졌을 때 업계에서는 크게 두가지로 추측했다. 터보테크가 그동안 이익을 부풀리거나 손실을 감춰서 손익계산서를 허위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내부임직원이 회사 자금을 공개할 수 없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채워넣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29일 장흥순 회장과 터보테크(032420) 관계자들이 내놓은 해명에 따르면 터보테크 사건은 후자쪽에 가깝다. 장 회장 측은 그러나 이 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을 위해 썼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횡령사건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장 회장은 "과거 주가가 높았던 시절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주가가 급락하면서 추가 담보요구가 들어왔다"며 "이를 회사의 예금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단 막았는데 주가가 하락하자 금융권에서 회수해버리면서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장 회장의 부채가 늘어났고 터보테크 주식이 재산인 장회장은 담보로 맡겨진 자신의 지분이 담보권 행사로 시장에서 처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 자금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터보테크가 분식회계라는 암초에 걸리기 시작한 때가 터보테크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99년과 2000년 '벤처 전성기'때, 회사나 장흥순 회장이 모두 '가장 잘 나가던 시기'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지난 2000년 3월 주가가 현재의 40배인 4만원대로 치솟아 오르던 당시 터보테크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840억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새로 발행하는 주식은 627만주. 주당 1만3360원이 주당 단가였다.

터보테크 지분 22% 가량을 갖고 있던 장 회장도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약 185억원 정도였다.

문제는 코스닥 등록으로 갑부가 된 장 회장이었지만 재산은 모두 터보테크 주식으로 갖고 있을 뿐 200억원 가까이 되는 현금은 갖고 있지 못했다.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거나 보유주식을 시장에 내다팔고 그 돈으로 좀 더 싼값에 유상증자를 받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는 그런 일은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최대주주가 할 일이 아니었다.


 
장 회장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주식중에 일부를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다. 당시 340만주 가량을 보유하고 있던 장회장의 지분 가치는 700억~1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200억원쯤을 빌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

그러나 2000년 연말을 기점으로 벤처열풍이 급속도로 사그러들었고 그가 담보로 맡긴 지분의 가치도 떨어졌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장 회장을 압박했다.
돈을 갚거나 추가 담보를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이때도 장 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유지분을 팔아서 돈을 갚는 일이었는데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빌렸던 돈이었으므로 회사 예금을 추가 담보로 넣기로 했다.

이때부터가 회사 자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단지 담보로만 제공했을 뿐이어서 주가가 회복되면 회사 자금에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장 회장은 "무엇보다 터보테크를 주인없는 회사로 만들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주가는 계속 떨어졌고 돈을 빌려줬던 금융기관은 담보로 맡겨진 회사 자금을 회수해갔다. 이때부터 터보테크는 약 200억원 균열에 말려들기 시작한다. 

장 회장은 700억원의 사용처를 모두 밝히지는 않았지만 2000년 당시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빌린 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98년에도 회사에 자금이 필요할 때 엔젤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회사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장 회장은 당시 보유지분을 넘기기로 하고 돈을 받아 회사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99년부터 불어온 벤처열풍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엔젤투자자들이 주식을 달라고 요구했고 장 회장은 대주주가 주식을 개인들에게 파는 모습이 좋지 않게 비춰질 것을 우려해 이를 주식가치만큼 현금으로 갚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도 상당한 자금이 대출을 통해 발생했고 역시 앞서 설명한 흐름처럼 회사 예금이 담보로 들어갔다가 금융권으로 회수됐다.

벤처업계의 대부로 통하던 장 회장은 후배들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투자를 했고 여기서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도 장 회장 개인이 손실을 떠안기로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했고 담보는 장 회장의 보유주식이었지만 주가가 떨어지자 회사 예금이 추가 담보로 제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럴 경우 회사가 대표이사에게 자금을 빌려준 것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터보테크는 이 부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미뤄오다 최근 조사에서 적발된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그때그때 회계처리를 했어야 했지만 주가가 다시 오르면 장회장 지분을 현금화해서 회사에 되갚으면 된다고 판단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벤처협회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벤처업계의 맏형 노릇을 해온 장 회장이 자기 회사에서 벌어진 자랑스럽지 못한 일을 가능하면 감추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장 회장은 "형사처벌을 포함해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보유지분과 개인재산은 물론 대표이사직도 내놓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다만 터보테크라는 회사는 살려줬으면 좋겠다"며 읍소했다. 

터보테크 관계자는 "모든 일이 대주주가 지분 이외에 숨겨둔 재산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 선처를 하소연하기도 했다.

종합하면 이번 터보테크의 분식회계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심없이 뛰다가 불가피하게 생긴 사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 자금을 사용한 대주주의 불법행위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벤처기업이 처한 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 회장의 분식회계는 분명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회사 지분을 파는 대주주는 문제 있는 대주주`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

지분 외에는 딱히 재산이 없는 자수성가형 CEO들이 대주주 지분매각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을 꼬집는 지적이다. 벤처업계가 터보테크의 분식회계 노출로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은 이미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장 회장의 읍소가 사법적 판단에 어떻게 반영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