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달빛', 초가을 밤 관객 마음을 적시다
by장병호 기자
2022.09.01 12:59:53
31일 연세대 노천극장서 야외 공연
''크레디아 프롬스'' 첫 주인공 나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관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 선사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31일 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무대에 올랐다. 환한 표정으로 화답한 뒤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은 조성진이 건반 위에 손을 얹자 아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조심스럽게 연주를 시작한 앙코르 곡은 드뷔시의 ‘달빛’. 초가을 밤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선곡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 지난 8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크레디아 프롬스-조성진 그리고 쇼팽’의 공연 장면. (사진=크레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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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계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야외 공연으로 관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새롭게 선보인 ‘크레디아 프롬스’의 첫 주인공으로 이날 관객과 만났다. ‘크레디아 프롬스’는 크레디아가 2010년 시작해 소프라노 조수미, 지휘자 정명훈, 첼리스트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 등이 거쳐 갔던 ‘파크 콘서트’에 이은 새로운 야외 공연 시리즈다. ‘조성진 그리고 쇼팽’이란 제목을 내건 이번 공연은 당초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1년 만에 열렸다.
이번 공연은 조성진의 변함없는 티켓 파워를 보여줬다. 7000여 석 규모의 연세대 노천극장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 당일 네이버TV 후원 라이브로 진행한 유료 실황 중계도 5000여 명이 관람해 전체 관람객 수는 1만 2000여 명에 달했다. 야외 공연임에도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다. 악장 사이에 나오는 박수나 휴대전화 벨소리처럼 기존 클래식 공연장에서 접할 수 있는 ‘관크’(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하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공연은 조성진에게도 의미가 특별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전곡을 선보이는 흔치 않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성진이 국내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건 이날 공연이 처음이었다.
조성진은 영상 인터뷰를 통해 “쇼팽 협주곡 2번의 2악장은 제가 전체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좋아하는 악장 중 하나이고 야외 공연과 이 곡의 분위기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선곡 배경을 밝혔다. 또한 “한국에서의 연주는 항상 제일 긴장되는 무대이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 많이 기대하고 열심히 준비했다”며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이날 연주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창단해 올해 25주년을 맞은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함께 했다.
| 지난 8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크레디아 프롬스-조성진 그리고 쇼팽’의 공연 장면. (사진=크레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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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예원학교 후배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 함께한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조성진과 김한은 풀랑크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거슈인의 ‘프렐류드’ 1번으로 공연 오프닝을 장식했다. 야외 공연에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공연 시작 전 날벌레들이 조명에 날아들면서 조성진이 건반 위에 떨어진 벌레를 걸레로 닦아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악조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에 몰두하는 조성진의 모습은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쉬움도 없진 않았다. 7000여 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임에도 출입구가 협소해 공연 시작이 17분 정도 지연됐고, 공연이 끝난 뒤 퇴장 과정 또한 긴 시간을 소요했다. 계단 형태의 노천극장 특성상 장시간 앉아 공연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문 클래식 공연장이 아님에도 7만~11만원에 달하는 티켓 가격은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었다.
한편 조성진은 오는 10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한 번 한국 관객과 만난다. 대구콘서트하우스(10월 11일), 대전예술의전당(10월 12일), LG아트센터 서울(10월 13일), 롯데콘서트홀(10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0월 15일)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