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차 “바이든, 트럼프식 대북정책 '무조건 반대'는 안돼"
by정다슬 기자
2020.12.23 10:55:40
"바이든 정부 6가지 모델 중에서 대북정책 검토 중"
싱가포르 회담, 9·19 성명 성과 등은 받아들여야
"대북정책 선택지 황폐한 땅으로 남아있어"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2일(현지시간) 델라웨어 윌밍톤 퀸씨어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AFP제공] |
|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차기 미국 행정부인 조 바이든 정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 방식을 ‘무조건적인 반대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임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접근방식을 부정하며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이를 수용하며 시간만 낭비했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22일(현지시간) 미국 군사전략매체 워온더락(warontherocks) 기고문에서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짜는데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4가지 원칙 중 하나로 “과거의 접근법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하고 최악의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차 석좌는 그 예로 싱가포르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들었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 공동성명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명시적인 약속을 담고 9·19 공동성명은 비핵화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의 통제’고 정의하고 있다”며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차 석좌는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핵위협을 증가시키지 않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이뤄졌던 ‘전략적 인내’는 소용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략적 인내와 관련 “북한에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 불개입 정책이지만, 동시에 북한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며 “우리는 8년간 61번의 탄도미사일 시험을 봤다”고 밝혔다.
차 석좌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화염과 분노”가 거론될 정도로 북미 관계가 극도로 긴장상태에 휩싸인 것 역시 북핵위협을 억제하는 데는 큰 효과가 없었다고 봤다. 하노이회담 실패 역시 30여차례의 탄도미사일 시험으로 이어졌다. 차 석좌는 “이같은 시험발사는 북한의 의지에 기인하지만 같은 것을 반복해서 시도했던 미국의 암울한 정책 기록도 반영하고 있다”고 봤다.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긴밀한 협상하에 대북정책을 진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 성공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한국과 사전협의 없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켰다며 “이같은 일방적인 접근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거의 긍정적인 진전은 없는 반면, 동맹국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북핵 비핵화에 있어 중국은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완벽한 동반자는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민주화된 통일 한국을 원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면서 ‘현상 유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중국은 북한이 회담에 다시 나오도록 압박할 것이지만, 북한이 붕괴할 만큼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바이든 정부 취임 직후 북한이 도발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했다. 북한의 이같은 도발은 미국의 강경노선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이와 별개로 바이든 정부는 현재 ‘행동대 행동’이라는 기본적인 접근방식하에서 △리비아 모델 △전면적 강압정책 △트럼프식 모델 △정치적인 관계 재설정 △군비 통제 등 6가지 모델을 기초로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先) 폐기 후(後) 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은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으며,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하는 전면적 강압정책은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쉬운 선택이지만 한국정부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명확한 출구전략의 부재는 북한의 더욱 큰 무력 도발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지도자 간의 신뢰를 구축해 이를 해결하려는 트럼프식 모델은 실질적인 실무협상이 뒤따르지 않는 한, 전례에서 볼 수 있듯 “한판의 연극으로 북 지도자를 합법화하는 결과만 가져온다”고 봤다.
비핵화 협상에 앞서 북미 관계를 정상화시켜 정치외교학적 지형을 바꾸자는 ‘정치적 관계 재설정’은 일견 문재인정부가 주장하는 ‘종전선언’과도 닮아있지만, 차 석좌는 “북한의 인권에 대한 양보는 북한을 신뢰할 만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밝혀 이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북한의 정치 개방은 정권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도 했다.
군비 통제는 군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 봤다. 또 일본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라고 봤다.
차 석좌는 “과거의 고착된 장애물과 예측가능한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협상이 보여줬듯 이는 쉽지 않으며 새 행정부는 앞서 말한 모델을 섞으면서도 그들이 채택하는 어떤 정책도 불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말한 모델이 장점과 거의 동일한 무게의 단점 역시 갖고 있다는 사실은 대북정책의 선택지가 나쁜 선택과 더욱 나쁜 선택 사이에서 황폐한 땅으로 남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