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기록" 日 헌병경찰 탈취 의병 활동 문서, 100년 만에 고국으로

by김현식 기자
2024.08.14 13:23:36

국가유산청, 환수 문화유산 언론 공개회 14일 진행
''한말 의병 관련 문서'' 13건 등 환수 과정·의의 발표
"공세적 탄압에 맞서 싸운 의병 활동 기록 생생히 담겨"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 시판 등도 함께 공개

한말 의병 관련 문서(사진=국가유산청)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일제 헌병경찰이 탈취한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문서가 광복절을 앞두고 약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환수 문화유산 언론 공개회를 진행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을 통해 환수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환수 과정 및 의의를 발표했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지난달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했다.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된 항일 13도 연합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 이강년 등이 작성한 문서 9건, 항일 의병장 유인석의 시문집인 ‘의암집’ 제작 현장에서 일제 헌병경찰이 빼앗은 유중교와 최익현의 서신 4건 등 총 13건이다.

유중교는 위정척사를 주장한 화서학파의 중심인물로 의병장이었던 유인석 등을 배출했다. 최익현은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위정척사론의 대표자로 통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 전개를 촉구하며 직접 의병을 일으키고 항일의병운동을 이끈 의병장이다.

13건의 문서는 두 개의 두루마리로 표장(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 화첩, 족자, 등을 만드는 방식)되어 있다. 각 두루마리 첫머리에 덧붙인 글(추기)을 통해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芥川長治)가 문서들을 수집해 지금의 형태로 제작(1939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탈취는 1908~1909년 의병 탄압을 전개할 당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국가유산청)
독립기념관 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원을 지낸 박민영 원광대학교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독립운동 분야 최고 서훈을 받은 저명한 독립운동 지도자 10여명의 필적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그동안 문헌자료로만 확인했던 경기 북부 지역의 의병 활동이 상세하고 생생하게 담긴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며 “일제의 공세적 탄압과 군수품 부족 등으로 인해 고단한 나날을 보낸 눈물겨운 기록이 포함돼 있다”고 부연했다.

일제 헌병경찰이던 개천장치는 각각의 두루마리에 ‘한말배일거괴지척독’(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과 ‘한말배일폭도장령격문’(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이라는 제목을 적어뒀다. 이를 통해 당시 탄압 대상이었던 의병에 대한 일제의 부정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허위와 이강년을 체포한 사실이나 ‘의암집’ 제작 현장을 급습한 사실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일제의 의병 탄압 및 강압적 행위를 확인할 수 있다. 13도 창의군 제2대 총대장 허위가 붙잡힌 당일(음력 1908년 5월 13일) 작성한 문서와 허위의 체포를 통탄하면서도 각 의진의 협력을 촉구하는 허겸과 노재훈의 문서는 불굴의 항전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이다.

박 연구원은 “개천장치는 의병 탄압 활동의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라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며 책임자 자리까지 오른 인물인 만큼 자료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문서들을 튼튼하게 표장해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일관계사료집 각 권 첫페이지(사진=국가유산청)
조현묘각운 시판(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이날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환수한 ‘한일관계사료집’과 ‘조현묘각운’ 시판(시문(詩文)을 써넣은 현판)도 함께 공개했다.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다. 지난 5월 재미동포 개인 소장자가 역사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을 국민이 함께 향유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며 아무런 조건 없이 국외재단에 기증했다.

편찬 당시 총 100질이 제작되었으나 현재 완질로 전해진 것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까지 2질뿐이라는 점에서 이번 환수의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또한 각 권 첫머리에 집필자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김병조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어 그의 수택본(手澤本, 소장자가 가까이 놓고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에 있어 활용 가치가 높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든 역사책이자 독립운동사의 근간이 된 책이라는 점에서 서예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현묘각운’ 시판은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의 작품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광덕리에 있는 옛 지명인 ‘조현’(鳥峴)에 묘각(묘 옆에 제사 등을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을 기념해 후손이 번창하길 축원한 칠언율시가 적혀 있다.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인물로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브나로드 운동 등을 추진했다. 신사참배와 학도병 권유유세와 같은 대일협력을 거부하며 항일 언론투쟁을 전개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사진=국가유산청)
최익현 의복과 유물(사진=국강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이날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을 결정한 의병장 최익현의 의복과 허리띠 등 5건의 유물을 함께 공개해 그의 서신이 포함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의 환수 의미를 더했다. 이날 공개한 문화유산들은 추후 소장기관을 지정한 뒤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문화재청에서) 국가유산청으로 전환한 이후의 첫 환수 성과를 알리게 됐다는 점에서 뜻깊다”며 “문화유산 환수는 물리적 회복의 의미를 넘어 선조들이 조국을 지킨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각국에 있는 문화유산이 국민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