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진석 기자
2001.09.20 20:13:11
[edaily] 주식시장이 사흘만에 고개를 숙였다. 사흘째 이어진 뉴욕증시의 하락세와 외국인의 매도세가 시장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증시에너지의 바로미터인 고객예탁금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빛은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예탁금은 아직 화중지병의 형국이다.
20일 종합주가지수는 하루 전보다 6.48포인트(1.3%) 떨어진 480.27포인트로 끝마쳤고, 코스닥지수도 1.10포인트(2.18%) 하락한 49.36포인트로 되밀렸다. 선물지수도 1.25포인트(2.09%) 떨어진 58.60포인트로 내려앉았다.
거래소시장의 경우 하락 종목수가 573개에 달했지만, 시가총액 2~4위 권에 랭크된 SK텔레콤과 한국통신, 한국전력 3종목이 선방하면서 지수 하락폭을 크게 둔화시켰다.
특히 SK텔레콤은 최근 가장 견조한 시세흐름을 보이고 있는 종목으로 꼽히고 있다. SK텔레콤은 미국에서 테러 사태가 발생한 직후 시장이 열린 12일 9.18%의 급락세를 보인 뒤 줄곧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14일 단하루 보합권에 머물렀지만 이후 나흘 연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SK텔레콤의 20일 마감 주가는 4500원(2.12%)이 오른 21만6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지분율도 47.01%로 높아졌다. SK텔레콤의 외국인 지분율이 47%를 회복한 것은 지난 6월12일(47.02%) 이후 근 1백일만의 일이다.
이와 관련 오늘은 "나를 따르라" 종목의 존재 유무가 주는 의미를 알아본다. 또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 현실에 비추어 "이판사판"이 담고 있는 교훈도 짚어본다.
"나를 따르라" 종목은 한마디로 주도주를 말한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일컬어 "폴(Pole)대 종목"이라고도 말한다. 사실 주도주는 강세장에서 어울리는 용어다. 약세장에선 그저 "틈새종목"으로 불리는 게 적당하다.
강세장과 약세장을 구분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사람마다 잣대도 다르다. 그러나 주도주와 주도세력의 존재여부는 강세장과 약세장을 구분하는 공통 가늠대로 활용되곤 한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일 때는 주도주가 있게 마련이고, 주도주의 추세가 살아있으면 추가상승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해진다. 그러나 주도주가 꺽이면 시장흐름도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반대로 약세장에서 독야청청하는 종목이 있다면 앞으로 "불씨"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틈새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 나름대로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SK텔레콤에 대한 증시전문가들의 시각은 어떨까. 이와 관련 "불씨"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커다란 기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신관련주들이 세계 주요증시에서 상대적으로 견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경기침체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이 투자심리를 짓누르는 상황인 만큼 추가상승의 한계를 드러낼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최근 외국인이 SK텔레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지만 시장 전체적으론 나흘째 매도우위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스럽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내 주식형 뮤추얼펀드의 자금유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환매에 따른 매물 출회 우려감을 낳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증시가 처한 현실은 특정 종목과 업종이 "불씨" 역할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시각이 우세하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경기침체와 미 테러 사태 이후 전쟁 발발 가능성 등 불확실성의 증폭에 따른 시장의 체계적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 등 통신주의 버팀목 역할에 대해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통신주의 "불씨" 역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시장에 희망(틈새종목)이 있는 것과 없는 것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희망의 존재는 시장의 하방경직성을 높여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상당한 부담으로 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SK텔레콤 등 통신주를 주목해보자.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금리도 내리고 유동성도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거듭 밝힌바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주가는 떨어지는데 예탁금은 연일 폭증, 19일 현재 8조8884억 원을 기록중이다. 테러 사태 이후 무려 1조3000억 원 이상 늘은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투자원금을 살찌우는 투자자보다 까먹는 투자자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이판사판"의 심정에 사로잡힌 투자자들도 한 둘이 아니다. 관련업계도 죽을 맛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거래에 있어 개인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판사판"의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히 "이판사판"은 막다른 판단을 해야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배수의 진"이라는 의미보다는 "될 때로 되라"는 자포자기성 뜻을 더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 부정적이거나 나약한 뜻을 담고 있지 않다. 이판사판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라는 불교용어에서 유래됐다. 이사무애법계는 이법승(理法僧)과 사법승(事法僧) 그 어느쪽에도 막힘이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법승은 수도승을 의미하고 사법승은 사찰의 행정을 맡아보는 승려를 뜻한다. 비유하자면 흔한말로 업무는 업무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모두 잘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도 강세장과 약세장을 넘나들며 수익률을 챙길 수 있을까. 물론 파생상품 등을 이용해 단기적으로 가능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투자고수라도 강세장에선 몰라도 약세장에서도 줄곧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선 그야말로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 확률은 더욱 낮아지게마련이다.
투자자로서 "이사무애법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약세장에선 생존전략을 세워보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시장이 피곤함을 호소할 땐 조심스러운 장세 접근이 요구된다. 대박의 꿈은 유혹적이지만, 아직은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은 게 현실이다.
어떤 광고의 카피처럼 꼭집어 주도주와 주도세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주변여건도 불투명하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때를 기다려 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다시금 생각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