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줌인] '글로벌 특허챔피언' ETRI 키워낸 김흥남의 도전
by이승현 기자
2014.04.02 15:17:36
2009년 부임 뒤 '특허 프로젝트' 시작...치열한 내부경쟁 유도·톡톡한 당근 제시
미국특허 종합평가 3년연속 '세계 1위'..."특허는 경제적 가치에 직결"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이른바 ‘3P’(Paper(논문)·Product(연구개발 기술이전)·Patent(특허)) 지표로 평가된다. 이 중 지식재산의 핵심인 특허에 천착해 소속기관을 세계 ‘특허 챔피언’에 올려놓은 기관장이 있다. 김흥남(58)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다.
김 원장은 지난 2009년 11월 취임과 함께 ‘특허 경영’을 3대 경영목표 중 하나로 앞세우며 ETRI를 ‘특허공장’으로 변모시키는 데 발벗고 나섰다.
그는 먼저 2500명 가량인 ETRI 전체 연구원을 대상으로 특허 프로젝트인 ‘Breakthrough One-One-One’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연구원 1명이 1년간 해당 분야의 ‘돌파구’(breakthrough)가 될 만한 기술을 1개씩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원들이 전자·전기·통신·컴퓨터 등 분야에서 개발한 기술은 내부심사와 동료평가 등을 통해 S급·A급·B급·C급으로 나뉜다. 수준이 가장 높은 S급과 A급은 미국 등 해외에 특허출원을 원칙으로 하며 B급은 국내특허 출원용으로 사용된다. 수준이 가장 낮은 C급은 특허출원이 불가능하다. 연구원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들어 특허의 질과 양을 한꺼번에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ETRI는 치열한 내부경쟁과 함께 당근도 제시한다. 현직 연구자뿐만 아니라 퇴직 연구자에게도 특허 기술료 수익의 절반을 준다. 연구원들이 나중에라도 특허료 수입을 톡톡히 챙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현직에서 기술개발에 매진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다. 또 현장 연구원들에게 각종 특허 제도와 전략 등을 지원하는 ‘특허 코디’를 선임급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김 원장의 시도는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ETRI는 미 특허청에 매년 700~800건의 특허를 내며 지난 2010년 세계 각국 연구소 가운데 미국 특허평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연구소와 대학, 정부기관 등을 모두 합한 2011년 평가에서도 종합 1위에 오른 뒤 올해까지 3년 연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사추세츠공대(MIT)와 스탠포드대등 미국 유수의 대학은 물론 독일 프라운호퍼나 일본 이화학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소도 제친 결과다. 정부는 2일 이번 결과를 발표하며 “‘과학강국 한국’의 기술력을 입증한 쾌거”라고 했다.
미 특허평가 1위의 자리는 상당한 실리도 따라온다. ETRI는 지난 5년간 1600억 원의 특허기술 수익료를 얻었다. ETRI는 특히 특정분야에 반드시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국제 표준특허’를 376개 보유한 데 기대를 걸고 있다. 표준특허 한 건이 100억 원 정도의 가치를 평가받기 때문에 총 4조 원에 가까운 잠재적인 특허수입이 가능하다. ETRI는 현재 롱텀에볼루션(LTE) 분야의 국제 표준특허만 20여 개를 갖고 있다.
ETRI는 다만 ‘장롱특허’를 양산하는 특허의 양적확대는 이제 지양하고자 한다. 국제 표준특허와 같이 수준 높은 특허 만들기에 주력한다. 현재 32개의 세부과제를 5세대(5G) 통신과 실감방송 등 중대형 과제 10개로 재구성한 연구 몰입도를 높이는 게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창조경제를 만들기 위해선 지식재산이 제일 중요하다”며 “지식재산 분야에서도 특허는 경제가치와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발명공장’을, 벨 연구소는 ‘아이디어 공장’을 만들었다. 지난 1998년부터 ETRI에 몸 담고 있는 김 원장은 이 곳을 세계적인 ‘특허공장’으로 만들어 국내 중소·중견 기업에 무상으로 많이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