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5.02.04 20:26:52
"따뜻하고 24시간 개방… 급식도 좋아"
서울역 소동후 배로… 100명 와글와글
[조선일보 제공] 3일 밤 11시 수원역 2층 대합실. 열차·지하철 승객이 줄어들면서 이곳은 서서히 ‘노숙자 쉼터’로 바뀌어간다.
대합실 청소가 끝난 4일 오전 0시30분쯤, 이제 승객 대기용 의자,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출입문 주변, 화장실 주변 통로 등 대합실은 노숙자들 80여명이 차지하고 있다.
한 노숙자는 “서울에서 열흘 전 이사왔다”며 “우리가 어디에 얽매여 사는 것도 아니고… 마음 내키지 않으면 그냥 자리를 옮기는 것 아니냐”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수원역에 노숙자들이 몰리고 있다. 수원역 박경수(50) 역무팀장은 “노숙자들은 지하철 무인승차가 ‘묵인’되고 있어, 서울역 등지에서 수원역으로 쉽게 이동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원역 노숙자는 90여명선. 지난해 말 40~50명 수준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따라서 노숙자 연고지도 383명이 대규모로 머물고 있는 서울역과 영등포역(88명)에서 수원역·의정부역·부천역으로 점차 광역화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서울역에서 노숙자 소동이 있은 후 30여명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수원역은 다른 역과 달리 대합실이 24시간 개방되며 난방 시설 또한 가동된다. 그래서 인적이 뜸해지는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이곳은 노숙자들의 달콤한 휴게실이다.
급식도 다른 곳과는 차이가 난다. 3일 저녁 8시30분 수원역 건너편 한 작은 공원. 무료급식이 시작되기 30분 전인데도 노숙자 80~90여명이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 넣은 채 50여m 이상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무료급식 내용은 김치 생선구이 나물무침 등 3찬과, 펄펄 김이 나는 된장국. 이들은 누런색 플라스틱 식판에 담긴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경기도 사회복지과 심재경(48)씨는 “수원역 앞 무료급식이 다른 곳보다 낫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식사시간에 맞춰 서울에서 원정오는 사람까지 있다”며 “무료급식을 받는 노숙자의 30%는 좀더 나은 저녁 식사를 위해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수원역에서 발생하는 행려병자 신고도 지난해 말 3~4건에서 올해 10여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수원역은 따뜻해 마음 놓고 술을 마시다 쓰러져 실려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서울·영등포역에서 노숙자가 늘어나면서 텃세나 서열에 밀려 수원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원역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노숙자 중에는 서울에서 ‘대빵’(힘 있거나 오래된 노숙자)한테 찍혀 쫓겨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수원역·의정부역·부천역으로 노숙자 거처가 파급되면서 경기도 내 길거리 노숙자수도 지난해 말 100여명에서 한달 새 350여명으로 급증하는 추세이다.
노숙자 쉼터 ‘해뜨는 집’ 우영식(44·상담원)씨는 “수원역 등 경기도로 모여드는 노숙자 중 60%는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따뜻한 밥 한 끼도 중요하지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