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이행 어려워서 CF100?…확산 가능성 있을까요[궁즉답]

by김형욱 기자
2023.05.19 16:00:00

정부·산업계 CFE 포럼 만들어 국내외 확산 모색
열악한 재생e 보급 여건, 원전·청정수소로 보완
쉽진 않지만…확산 성공땐 韓 산업계 유리할수도
"RE100 대체하는 개념 아냐…재생e 중요성 불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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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정부와 산업계가 지난 17일 CF100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겠다며 무탄소에너지(CFE, Carbon Free Energy) 포럼을 만들었습니다. 내년까지 CFE 인증제도를 만들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CF100 캠페인을 위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국제 스탠다드로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입니다. 영국 클라이밋그룹 등이 2014년 시작해 구글, 애플, BMW, 삼성전자, 현대차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을 포함한 400여 기업이 참여한 RE100 캠페인처럼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막 개념 정립에 나선 CF100 캠페인이 단시간 내 국제 캠페인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정세 흐름을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고, 이 같은 노력이 한국, 특히 우리 산업계에 유리할 수 있기에 정부와 업계가 함께 도전에 나선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무탄소에너지(CFE) 포럼 출범식에서 주요 관계자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장, 이창양 산업부 장관, 우태희 대한상의 부회장,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 (사진=산업부)
우선 이 두 캠페인이 무엇인지 또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건지 살펴보죠.

모든 것의 시작은 기후위기입니다. 전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가 우리 생존을 위협한다는 판단에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국제연합(UN)이 1992년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며 스타트를 끊었고, 1997년 교토의정서로 이를 구체화했습니다. 현재는 2015년 파리협정으로 모든 나라가 반드시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즉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 지키면 좋고 아니면 마는 개념이 아닙니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국은 이 약속에 맞춰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에 탄소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거대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글로벌 산업 공급망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든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1년 12월 펴낸 ‘한국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내용과 과제’(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중 한국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실현 가상 경로. (표=에너지경제연구원)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캠페인도 이 같은 흐름에서 나왔습니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정보프로젝트(CDP)는 2014년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을 모두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구글, 애플, BMW, 삼성전자, 현대차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을 포함한 400여 곳이 차례로 이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이들 기업에 부품·서비스를 공급하는 수많은 기업도 계약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캠페인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은 큰 부담을 느끼는 중입니다. 당장 이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만들어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하필 우리 산업은 제조업, 그것도 전기를 엄청 많이 써야 하는 반도체나 석유화학, 철강 등이 주를 이룹니다.

여건도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비중이 10%도 안 됩니다. 30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습니다. 40%를 넘어선 영국이나 독일 같은 선도국과는 비교 불가입니다. 정부가 최근 2036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6%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기는 했는데, 주요 경쟁국과 비교하면 이 역시 턱없이 부족합니다.

핑계일 수 있겠지만, 우리 환경도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좋다곤 할 수 없습니다. 전력망 측면에선 사실상 섬나라입니다. 유럽처럼 유사시 전기가 부족하다고 다른 나라에서 끌어올 수 없습니다. 국토도 넓지 않고 그나마 산지 위주입니다. 아예 섬나라인 대만과 비교하면 바다 면적도 좁습니다.

정부가 올 1월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중 2036년까지의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 계획.
이런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우리가 CF100를 확산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CF100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 청정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등 모든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꼭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만 갖고 탄소중립할 필요 있나,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우리가 새로이 만든 개념은 아닙니다. 유엔에너지와 구글 등이 2018년 하루 24시간 주7일 CFE를 사용하자며 내놓은 개념입니다. 한국에선 CF100라고 부르지만, 국제적으론 24/7 CFE로 통용합니다. 특히 재작년 2021년엔 유엔 고위급 에너지 회담에서 이 개념이 다시 거론되며 최근 전 세계적 확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CF100 캠페인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 특히 한국 산업계는 여러모로 유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이 뒤처졌으나, 원자력과 청정수소에는 강점이 있으니까요.



한국은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운영하는 세계 20여개국 중 하나입니다. 원전 25기가 국내 전체 전력생산의 약 30%를 맡고 있죠. 더욱이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5개국(한국·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 중 하나입니다. 청정수소를 활용한 발전도 아직 상용화 이전 단계이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선 세계 선도국으로 손꼽힙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출신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CF100이 자리를 잡는다면 원전 비중이 높고 청정수소 투자를 확대 중인 우리나라에 매우 유리하고 그만큼 기업도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CF100(24/7 CFE) 캠페인 로고
다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으리란 게 많은 기업과 전문가의 전망입니다. RE100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한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토대로 대형 발전사에 신재생에너지공급 의무를 부여(RPS)하고 부족분을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거래토록 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이 기준에 따라 RE100에 동참 여부를 결정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받습니다.

그러나 CFE는 아직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없습니다. 원자력, 청정수소, CCS 같은 걸 포함한다는 식의 얼개는 이미 잡혀 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는 단계는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을 만들고, CFE 인증서를 거래할 시장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CF100 캠페인도 확산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가 당장 국내에서부터 CFE 인증제도를 만들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시장을 형성한 REC와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설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푸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자국 친환경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그 기준을 CFE로 삼았습니다. 미국 주도로 결성을 추진 중인 14개국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도 친환경 에너지의 기준을 CFE로 삼아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완전한 탈원전으로 RE100을 선도 중인 독일 등 일부 유럽국과 달리 달리 미국, 영국, 일본 등 나머지 주요국은 여전히 원전을 주요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활용합니다. 이들 국가로서도 CF100 확산이 나쁠 것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CF100 캠페인 확산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 전경. (사진=한수원)
주의할 게 있습니다. CF100 캠페인이 활성화하더라도 RE100 캠페인의 대체재가 될 순 없다는 겁니다. 지금껏 없던 어려운 개념이다 보니 언론 보도에서도 ‘대체재’로 불리기도 하지만, 또 먼 훗날 그렇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현 시점에서 CF100과 RE100은 완전히 별개의, 보완적 개념입니다.

우리 주도로 CF100이 활성화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민간 비영리단체와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RE100을 위축시킬 순 없습니다. 즉, 기업으로선 CF100 캠페인 확산 여부를 떠나 RE100 캠페인 확산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을 이용률을 늘려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한참 후 CF100 캠페인이 대세가 되더라도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려야 할 겁니다. 현 시점에서 완벽한 무탄소 에너지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원전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기술로 대안을 모색 중이지만,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 같은 대형 사고 여파로 주민 수용성이 낮다는 어려움이 여전합니다.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역시 여태껏 해결 못 한 난제입니다. 청정수소 역시 이론상으론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어디까지 상용화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현 시점에선 어떤 에너지원이든 장단점이 있고, 인류는 탄소중립이란 생존 목표를 위해 현 석탄·가스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을 모든 에너지 신기술을 가치 중립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준환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기업이 RE100 이행에 불리한 만큼 우리도 우리 여건에 맞는 대안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CF100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RE100과 CF100은 대체관계가 아닌 별개의, 보완적인 제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장도 “원전은 물론 재생에너지도 상당 폭 늘려야 당장 RE100의 직접 압력을 받는 국내 기업을 돕는 것은 물론 CFE 확산 움직임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CF100이 마치 RE100을 대체할 것처럼 인식하거나 기대하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자칫 전 세계의 대세적 흐름인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에 뒤처져 도태할 수 있습니다. 가짜 친환경, 이른바 ‘그린 워싱’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에너지전환포럼 같은 에너지 전문가 단체가 현재 정부와 산업계가 CF100 확산을 꾀하는 걸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RE100 달성에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 현 상황에서 정부가 그 집중력을 분산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새만금해상풍력단지 조감도 (사진=새만금개발청)
CF100 개념을 처음 제시한 구글부터가 2017년 일찌감치 RE100을 달성한 이후에서야 2018년 들어서야 CF100을 꺼내 들었습니다. 구글이 RE100을 달성해놓고 보니 전력 생산량이 불규칙한 태양광·풍력 발전만으로 필요한 전력을 100% 충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해 새로운 개념을 꺼내 든 거죠. 현 RE100은 실제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으로 충당하는 대신 녹색프리미엄이란 ‘웃돈’을 주고 전기를 사는 방식으로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RE100 캠페인만으로 석탄·가스발전 같은 온실가스 배출 산업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기에 이를 보완한 방법을 모색한 거죠.

결국 우리 산업계가 그럼에도 CF100 확산을 모색하는 건 RE100, 재생에너지 일색인 현 국제적 탄소중립 흐름에 ‘숨통’을 트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전 세계에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만이 탄소중립의 정답은 아니다. 원전도 청정수소도 답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겠다는 거죠. 특히 원자력·수소산업계로선 이 같은 움직임을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난 18일 제주에서 열린 2023년 한국원자력학회 춘계학술발표회에서 “국내 원자력계도 전 세계 에너지 환경 흐름에 맞춰 SMR 개발 등 전 주기에 걸친 혁신과 성장이 필요하다”며 “이에 더해 수소,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와의 융합과 CF100으로의 확장 등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18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원자력학회 춘계학술발표회에서 특별강연하는 모습. (사진=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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