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 인상..대형마트 '배신'에 유업체 '멘붕'(종합)

by이승현 기자
2013.08.08 15:58:53

대형마트 4사, 종전가격으로 우유 판매
당황한 유업계, 대책 마련 부심

[이데일리 이승현 장영은기자] ‘원유(原乳)가격 연동제’ 도입 이후 처음 시도된 유업계의 우윳값 인상이 대형마트의 비협조로 급제동이 걸렸다. 유업계는 기존(250원 인상) 방침대로 우윳값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유통업체들은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의지와 가격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 등을 고려해 종전 가격 그대로 판매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유업계는 원유값 인상분(106원) 정도로 가격을 조율해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8일 이마트(139480)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이날 오전 매일유업의 우유 가격을 2350원에서 2600원으로 250원 올렸다가 오후부터 다시 종전 가격인 2350원으로 내렸다. 하나로마트가 가격 인상을 하지 않고 종전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업계 최저가격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각사에서 잇따라 가격을 다시 내린 것. 이날 가격을 인상했던 롯데슈퍼와 GS슈퍼마켓, GS25도 가격 인상을 철회했고 9일부터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던 CU와 세븐일레븐 역시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매일유업(005990)과 9일부터 가격 인상이 예고된 서울우유와 동원F&B(049770)는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번 우유 가격 인상 철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달 말 유업체들은 우윳값 인상 계획을 발표하면서 원가 인상보다 너무 인상 폭이 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1일부터 오른 원유가는 ℓ당 106원인데 우윳값 인상 폭은 250원으로 144원이 많다.

정부와 소비자단체들에서는 원유가 보다 우윳값 인상 폭이 큰 것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유업체와 대형마트들을 압박했다.

먼저 무릎을 꿇은 것은 대형마트였다. 우윳값 인상으로 대형마트들이 ‘가만히 앉아서 매출과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급기야 정부가 주요 대형마트 실무자들을 불러 우윳값 인상에 대한 억제 의지를 전달했다.

우윳값 인상분 중 원유가 인상분을 제외한 144원은 대형마트(50원)와 대리점(50원), 유업체(44원)들이 나눠 갖게 된다. 연간 1조원의 우유를 판매하는 대형마트들은 우윳값을 올린 것만으로도 ℓ당 매출은 250원씩, 수익은 50원씩 챙길 수 있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간 매출 1000억원, 수익 200억원씩 늘어나게 된 셈이다.



따라서 월 2회 의무휴무로 매출과 수익이 떨어진 대형마트들 입장에서는 우윳값 인상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우윳값 인상을 대형마트들이 주도한 것이란 의혹을 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들이 가격 인상을 철회함에 따라 가장 당황한 것은 유업체들이다. 원유가 인상으로 당연히 가격인상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유업체들은 2011년에 이어 다시 한번 우유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악몽이 되풀이하게 됐다.

2011년 유업체들은 원유가격이 138원 오르고도 3개월간 우윳값을 올리지 못해 5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

우윳값 인상 시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이마트가 우윳값 인상에 동참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인상이 철회된 것이라면 유업체와 마트 간 관계 뿐 아니라 마트끼리도 눈치를 보고 있어 쉽게 우윳값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윳값을 인상하더라도 인상 폭은 ℓ당 150~180원선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여론이 지적하는 것은 우윳값을 인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상 폭이 크다는 것이다”며 “원유값 인상을 빌미로 업체들이 폭리를 치할 수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