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들 치매신약 투자...K바이오 기술수출 가능성은

by임정요 기자
2025.01.09 09:38:47

[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이 점멸하고 흐려지는 무서운 뇌질환, 치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치매인구는 2023년 기준 5500만명에 달하고 매년 1000만건의 사례가 추가되고 있다. 노령화 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치매인구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뇨와 비만인구의 증가로 65세 이하 인구에서도 치매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어스(Market.us)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시장은 2024년부터 연평균 18.8%로 성장해 2033년에는 45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미래성장성이 무궁한 치매신약 개발을 위해 조단위 기술계약 또는 기업 인수를 활발하게 추진하는 상황이다.

9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치매 극복을 위해 글로벌 빅파마들이 경쟁적으로 나서고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애브비 등은 치매신약 물질의 기술도입과 유망업체 인수를 단행했다.

(사진=동아에스티)
BMS는 지난달 에자이-바이오젠의 FDA 허가 신약 레켐비의 원개발사인 바이오악틱(BioArctic)으로부터 비임상 단계 물질 2가지와 BBB투과 플랫폼 기술을 도입했다. 총규모 1조8000억원에 선급금은 1455억원, 판매에 따른 두 자리수 로열티까지 포함한 딜이었다. 구체적으로 BMS가 도입한 것은 ‘BAN1503’과 ‘BAN2803’을 포함한 ‘브레인트랜스포터’ 딜리버리 플랫폼 기술이다. 이번 계약으로 BMS는 아밀로이드베타 타깃 항체들에 한해 바이오악틱의 딜리버리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게 된다.

애브비도 지난 10월 2조원 규모에 알리아다 테라퓨틱스(Aliada Therapeutics) 지분 전량을 인수해 치매치료제 파이프라인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에서 애브비는 뇌과학 분야를 회사 사업에 있어 핵심 성장영역으로 설정하고 치매 환자들을 위한 혁신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알리아다 테라퓨틱스는 뇌혈관장벽(BBB) 투과 기술을 가진 바이오텍으로, 핵심 파이프라인인 ‘ALIA-1758’은 아밀로이드베타 타깃 항체다. A베타 침적물을 제거하는 ‘계열내 최고’(Best-in-class) 물질로 포지셔닝했다.

알츠하이머는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부터 ‘스텔스모드’로 뇌세포의 손상이 일어난다. 기억력 감퇴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예방 차원의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 점에서 임상 디자인이 까다롭다. 약효 덕분에 치매를 피한 건지, 입증할 방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타난 개발 논리가 바로 ‘바이오마커’ 기반 효능 입증이다. 치매 발병 요인으로 추정되는 ‘뇌내 아밀로이드베타 퇴적물’(Amyloid-beta plaque) 또는 ‘타우 단백질 엉킴’(Tau protein tangles)을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R&D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아밀로이드베타 바이오마커를 타깃으로 허가받은 치료제가 존재한다. 타우 바이오마커로 허가받은 것은 아직 전무하다.

포문을 연 것은 2021년 FDA 허가를 받은 바이오젠의 아듀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다. 아듀헬름은 치매 증상 완화가 아닌 아밀로이드 퇴적물 감소를 입증해 신약허가를 획득한 최초의 약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후 중대한 뇌부종(ARIA) 부작용 및 판매부진으로 2024년 1월 생산을 중단했지만, 아듀헬름이 개척한 ‘A베타 바이오마커’ 창구로 또 다른 치료제들이 잇따라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에자이-바이오젠의 레켐비(물질명 레카네맙)와 일라이릴리의 키썬라(물질명 도나네맙)다. 다만 이들 또한 ARIA 부작용이 없지는 않기에 보완된 치료제의 연구가 꾸준히 필요한 상황이다.



치매환자 입장에서는 치매 진행만 멈출 수 있다면 고가의 치료제도 불사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 말 국내에 출시한 레카네맙은 1년 반 동안 격주로 주사를 맞는데 4000만원 정도의 의료비가 들어간다. 근원치료제가 아님에도 치매증상 완화 및 중단에 대한 환자들의 언멧 니즈가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치료제를 연구하는 곳들은 주로 비상장사다. 대표적으로 아리바이오, 바이오오케스트라, 일리미스테라퓨틱스, 아델 등이 있다.

아리바이오의 경우 저분자화합물 치매치료제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품목허가 획득시 기술이전보다 더 큰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선 2023년 삼진제약(005500)과 미리 1000억원 규모 판권 계약을 맺고 선급금 100억원을 수령했다. 작년 3월엔 익명의 중국 제약사를 대상으로 1조200억원 규모 독점판매권 계약을 체결했으며, 합의된 일정에 따라 계약금 1200억원을 수령하는 조건으로 10월 기준 32억원을 실수령했다.

최근 주목 받는 곳은 아델이다. 신약개발사 대상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던 작년 17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브릿지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타우 바이오마커를 타깃하는 항체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오스코텍(039200)과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제약사 가운데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치매치료제를 개발 중인 동아에스티(170900) 또한 타우 바이오마커에 관심이 크다. 타우를 타깃해 개발 중인 경구용 표적치료제 ‘DA-7503’의 비임상 연구결과를 작년 알츠하이머 국제학회에서 포스터 발표하는 등 글로벌사와의 협업을 도출하려 노력 중이다.

이 외 대부분 국내제약사는 자체 R&D 보다는 타법인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치매치료제에 손을 뻗었다. 유한양행(000100)은 아임뉴런, 종근당(185750)은 바이오오케스트라에 각각 투자해 퇴행성뇌질환 신약 방면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임뉴런은 PD-L1 항체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겠다는 계획으로, 후보물질 발굴을 진행 중이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안티센스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로 알츠하이머 등 중추신경계질환 치료제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며 먼저 루게릭병 적응증을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비상장 단계에서 900억원의 누적투자금을 유치해 주목 받은 곳이다. 2023년 1조1100억원 규모의 BBB투과 플랫폼 기술계약을 체결했고, 다만 거래상대방 및 선급금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