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우의 축구&]옛 이야기 돼 버린 말련 축구...원인은 도박과 인종문제

by김삼우 기자
2007.07.13 18:40:52

[이데일리 김삼우기자] 한번 잃어 버리면 좀처럼 원래대로 회복하기 힘든 게 건강이다. 말레이시아 축구도 그런 것 같다.

이번 2007 아시안컵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최국 돌풍이다. 공동 개최국들인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연일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홈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이들 나라들이 중동의 강호들을 하나 둘 거꾸러트리는 것은 분명 파란이다.

한국과 같은 조인 인도네시아가 바레인을 눌렀고, 태국이 오만을, 베트남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잡았다. 이들에 패한 중동 국가들은 모두 만만찮은 실력을 가진 다크호스들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한 두 국가가 한 두 번 그럴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이제 개최국들을 눈을 씻고 다시 바라보게 됐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로 인도네시아와 맞붙는 한국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런데 공동 개최국 돌풍에 유독 비켜 서 있는 나라가 있다. 말레이시아다. 지난 10일 중국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5로 대패했다. 앞으로도 말레시아발 바람은 불 것 같지 않다.

탄탄한 조직력,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기술과 투지를 과시한 태국, 베트남 등과 전력차가 뚜렷하다 . 지난 5월 호주에서 3주간 전지훈련을 갖는 등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도 하는데 전혀 위협적이지 못한 말레이시아다.

한국 중장년층 축구팬들로선 의아스러울 법하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인데...’ 말레이시아가 어떤 팀이었나. 주요 국제 대회에서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던 동남아 축구의 강호였다.

지난 1971년 서울에서 열린 뮌헨 올림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에서 한국이 수중전 속에 0-1로 무릎을 꿇은 것은 아직도 축구팬들에게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친온 , 찬드란, 아르무감 등 70년 대 말레이시아 축구 전성기를 주도했던 선수들은 열성 축구팬들에겐 낯익은 이름들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축구의 현 주소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 6월 랭킹이 이번 아시안컵에 나온 16개국 중 가장 낮은 149위. 순위는 차치하고 현 전력도 태국, 인도네시아는 물론, 베트남에까지 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축구가 이렇게 몰락한 이유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04년 3월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취재차 말레이시아를 갔을 때였다.

당시 한국-말레이시아전은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 도시인 페탈랑자야에서 열렸다. 말레이시아 축구협회가 관중 동원에 자신이 없어 장소를 옮겼다는 설도 돌았다. 페탈랑자야 경기장의 관중 수용 규모는 1만8000명 정도였다.



.그 때 선수단 단장으로 함께 갔던 김진국 축구협회 기획실장은 "내가 국가대표로 뛰었던 70년대 말레이시아 축구는 이렇지 않았는데..."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한국하고 경기만 열리면 항상 4만~5만명의 관중이 꽉꽉 들어차 기를 펼 수 없었다니깐.”이라고도 했다.

분위기도 썰렁했다. 경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와도 현지 신문에서 자국팀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기사가 더 많았다. 당연히 한국 대표팀도 열외였다.

그때 대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도박이 말레이시아 축구를 망쳤다"고 나름대로 말레이시아 축구 몰락의 이유를 밝혔다..

축구 도박은 요즘도 동남아시아에서 횡행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80년대 후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승부 조작을 위해 검은 돈이 오가면서 주요 선수를 매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축구협회가 속수무책이자 정부까지 나서 각종 규제 조치를 취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시 도박 파동을 계기로 프로축구에 대한 투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축구장을 찾던 팬들의 발길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자단의 가이드 노릇을 했던 한 말레이시아인은 또 다른 측면에서 몰락의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인종 문제가 축구를 망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절반이 말레이인, 25%가 화교, 7%가 인도 파키스탄인, 그 밖에 유럽 아시아 혼혈 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정치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았는데 축구까지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대표팀에 화교 출신 선수들이 배제되면서 대표팀 전력이 급전직하했다고 주장했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소친온, 류룬택 등은 모두 화교 출신들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을 견제하고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가 축구판까지 뒤엎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가이드도 화교 출신이어서 어느 정도 피해의식이 깔려 있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전혀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중국전에 나선 말레이시아 대표팀에도 화교로 보이는 선수들은 없었다. 김진국 기획실장은 70년대만 해도 말레이시아 대표팀의 베스트11 가운데 3~4명은 화교 출신이었다고 기억했다. 말레이시아가 축구 자원의 25%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도박이건, 인종 문제이건 어느 것이 근본적이고 결정타인지는 모르겠지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축구가 단순히 스포츠로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모든 것을 반영하고 응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레이시아 축구의 몰락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