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걸린 6자회담, 난파 위기 치닫나

by오마이뉴스 기자
2006.04.13 21:40:30

북 "우리 없이 비핵화 토론 잘 해봐라"... 미, 양보없이 제재 조치로 일관

[오마이뉴스 제공] 북한의 위폐 문제라는 암초에 걸린 6자 회담이 흔들거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난파 상태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나올 정도다.

위기감은 최근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했던 북한과 미국 6자 회담 대표간의 만남이 무산되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6자 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도쿄에 3일간 같이 있었다. 그러나 둘은 회동은 커녕 잠깐 스쳤을 때 악수도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은 13일 도쿄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북핵 6자회담이 늦어져도 나쁘지 않다"며 "그 사이 우리는 더 많은 억제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억제력이란 북한이 보유했다고 선언한 핵무기를 말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부상은 이같이 말하면서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의 동결자금을 내 손에 갖다 놓으면 되며 그 자금을 손에 쥐는 순간 (6자)회담장에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BDA 계좌 동결로 묶인 북한의 자금은 2400만 달러다. 금융제재를 풀어야 6자 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어 "우리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양보는 다했다"면서 "나는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나의 참가 없이 비핵화 문제를 실컷 토론해 보라. 비핵화가 될 것 같은가"라고 강조했다.



김 부상은 "미국이 위조지폐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협의로 풀어야지 압력으로 되겠는가"라며 "우리는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강경대응할 것이며 우리의 전통적인 전법인 정면돌파를 하겠다. 이 문제에서는 양보가 없다"고 말했다.

김 부상의 발언에 대해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북한의 행태에 비춰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반응"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김 부상의 말이 잘 심사숙고한 정책의 표명인지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여기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말고 앞으로 후속 동향을 면밀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러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북한이 6자 회담 무기한 불참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북한의 신경망을 강타해, 그 누구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임이 증명됐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6자 회담은 진행하되 동시에 북한을 '옥죄는'(Squeeze) 새로운 제재 조치를 계획 중이다. 백악관은 미 재무부와 법무부에게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사법·금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전권을 줬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미 행정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최근 진행 상황을 보면 이 신문의 보도가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이 성과를 거두자 미 행정부 안에서 힐 차관보 등 이른바 협상파들의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대북 압박정책과 6자 회담을 병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미국도 6자 회담 재개에 과연 의미를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즉 병행론이 아니라 '대북 압박' 원 트랙(one track)아니냐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13일 오후 유명환 외교부 차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힐 차관보는 "6자 회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결코 감소되지 않았다고 몇차례 얘기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뻣뻣한 태도에는 한편으로 중국의 응원이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김정일 북한 국방 위원장은 갑자기 중국을 방문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을 방문했다. 4개월도 안돼 양국 정상 회동이 다시 이뤄진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급거 방중한 것은 위폐 문제에 있어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으로 분석했다.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황상 추론은 가능하다.

올 1월까지만 해도 국내외 언론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위폐 문제에 관한한 중국도 북한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위폐 문제에 있어 이미 버림받았다는 식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갈수록 긴밀해지는 북·중 관계를 볼 때 북한에게 불리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자 회담 재개를 염불처럼 외던 중국에서도 이 말이 뜸해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