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무기 수송기 적발, `BDA 사태` 데자뷰?

by이숙현 기자
2009.12.14 16:05:44

2005년, 9.19성명 직후 `BDA 제재` 발표
2009년, 북미 첫 대화 직후 `무기` 억류

[이데일리 이숙현기자]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싣고 이송 중이던 그루지야 국적 수송기가 지난 12일 태국 당국에 의해 억류된 사건은 지난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떠오르게 한다.

BDA 사건은 당시 제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어렵사리 도출되던 바로 그 시간에 미 재무부가 위조달러를 문제삼아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인 BDA 내 북한 계좌를 동결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후 북한이 크게 반발했고 6자회담은 거의 일 년 이상 열리지 않았다. 결국 다음해 10월 북측은 제1차 핵실험에 이르게 된다.

이번 북한 수송기 적발이 2005년 9월을 떠오르게 하는 이유는 바로 시점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처음 가진 북미 대화가 지난 8~10일 평양에서 성사됐다. 북한과 미국은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유사한 내용의 대화결과를 단 하루의 시차를 두고 발표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북미간) 6자회담 재개 필요성과 9.19공동성명 이행의 중요성과 관련해 일련의 공동 인식이 이룩됐다"며 "조미(북미) 쌍방은 남아있는 차이점들을 좁히기 위해 앞으로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고 강조한 것. 이는 바로 전날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에서 밝힌 것과 거의 흡사한 내용이다. 게다가 긍정적이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양국이 본격적인 대화를 위한 이번 `탐색전`을 큰 무리없이 끝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예비대화로서는 꽤 긍정적(quite positive)"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같은 북미간 대화 무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국정보기관의 도움`으로 태국 당국이 이 수송기를 적발한 것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만약 적발 시기가 `우연`이라면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라는 미국의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필연`일 경우 오바마 행정부 내 매파와 협상파간 분열음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향후 북미 대화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부시 행정부 당시에도 대화를 우선시하는 국무부 등 협상론자들과 북한의 정권교체를 시도했던 딕 체니 부통령 등 네오콘의 알력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BDA 사건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이번 사건을 두고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미국 내 협상론자들의 입지가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선임연구원도 "미국 정부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항상 불법적인 것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 법집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시할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에 대화를 하려는 국무부와 NSC(국가안보회의)입장이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적발 시점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국 군산복합체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미국 중심의 무기 시장을 깨뜨린다`고 보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미 정부 쪽에 관련 정보를 흘려서 대북제재를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해 군산복합체의 이해와 미 행정부 내 매파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필연`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은 "BDA사건과 이것은 성격이 좀 다르다"며 "미 재무부가 주도했던 BDA는 다소 불명확한 지점이 있었고 미국이 직접 북한을 제재하는 성격이 컸지만, 이번 수송기 건은 무기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고 유엔 제재 차원"이라며 그 차이점을 설명했다.

향후 북미 대화 전망과 관련, 송민순 의원은 "북미 대화 수준이 높게 올라가 있을 때는 영향을 주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며 "합의하거나 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백학순 선임연구원은 "결국 국제적인 제재 흐름과 병행해서 힐러리 국무장관과 NSC 등에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만큼 제재는 제재대로, 대화는 대화대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도 "오마바 대통령과 힐러리 장관이 왔다갔다하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면 대화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