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치는 블랙컨슈머.."한 건 잘 잡으면 로또?"

by류의성 기자
2011.02.22 14:42:28

왜곡된 소비의식과 미숙한 대응이 원인
건전 소비 문화 정착시켜야..합리적 보상기준 마련 필수

[이데일리 류의성 기자] PDP TV를 구입한 A씨. 그는 6개월 사용 후 화면에 흑점이 보인다며 구입가인 1000만원 환불을 요구했다. 제조사는 반점 현상이 기계적인 특성으로 제품이 정상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고의적으로 전원불량을 유발한 뒤 클레임을 제기했다. 그는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회사를 협박하고 회사 대표와 통화를 요구했다. 결국 그는 회사 측으로부터 1000만원을 돌려받았다.

A씨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소개한 블랙컨슈머의 한 사례다. 그는 고의적으로 제품 하자와 사고를 유발해 제조사로부터 보상을 받아냈다.
 
A씨 사례 외에도 최근 일어났던 `환불남` 사례나 쥐식빵 사건을 계기로 블랙컨슈머(악성소비자) 행태를 근절시키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KEA는 22일 `건전한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방안` 설명회를 열었다. KEA에 따르면 최근 상담사례 28건 가운데 64%인 18건이 블랙컨슈머 같은 강성클레임 소비자들이 제기한 사례다. 나머지는 제품 오사용 등 일반적인 사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블랙컨슈머들의 양산을 막기 위해선 건전한 소비 풍토를 정착시키고, 소비자 피해 발생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보상 기준이 마련돼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몽렬 KEA 사무국장은 "최근 블랙컨슈머들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타켓으로 하고 있다"며 "인터넷 게시판 등에 대기업들의 이미지 훼손을 야기시켜 돈을 노리는 행태가 많다"고 지적했다.

블랙컨슈머가 양산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 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소비자와 기업, 정부, 언론 등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측면에선 ▲소비자는 무조건 왕이라는 왜곡된 소비의식 ▲ 소비자는 피해자, 사업자는 가해자라는 잘못된 인식이 문제로 꼽혔다. 기업 측면에선 ▲지나친 판매중시 경영태도 ▲허위 과장광고로 인한 소비자들의 높은 기대치 ▲기업의 미숙한 대응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정부와 사회 측면에선 ▲정책 및 법규정 미비 ▲소비자 교육 부족 ▲경제 상황 악화 ▲사회 불신감 팽배가 원인으로 제시됐다. 언론이라면 명확한 사실 관계를 보도하고 진실을 추구해야하나, 일부 매체가 사실을 왜곡하며 잘못된 정보를 양산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최병록 서원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블랙컨슈머 같은 일부 소비자들의 행위는 무리한 수준을 넘어 일종의 범죄행위까지 나아가는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과학 분석 등 사후 해석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면 블랙컨슈머를 근절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오재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실장은 "근래 발생했던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이나 화재, 충격 등 사건은 비전문가들의 신뢰성없는 진술이나 검증되지 않는 실험 결과로 수사 관계자들에겐 혼선을 주고 국민들에게는 불안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법과학적인 후진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오 실장은"법과학 분석 등 사후 해석에 대한 몇가지 기본 마인드가 있으면 블랙컨슈머 근절과 건전소비문화 정착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랙컨슈머 근절을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최 교수는 "한 건 잘 잡으면 로또라고 생각하는 블랙컨슈머들의 비합리적인 요구가 통하지 않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선 원칙적 대응과 함께 소비자 전담인력을 갖추는 등 전문상담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사회전반적으로는 소비자상담 표준화와 합리적인 보상 기준 설정 및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은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무식한 사람도 불편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며 "기업들은 제품 사용 설명서를 과다할 정도로 알기 쉽게 만들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을 위한 기업들의 고지 의무 강화, 중간 유통업자들의 윤리 의식 강화와 유통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도 책임이 크다.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반드시 책임을 지는 법을 만들어서 서로가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상헌 KEA 부회장은 "오늘 행사를 계기로 소비자의 권익과 제조업체의 권익이 균형감각 있게 다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