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33)`경인운하 조정 실패`에서 배울점

byKDI school 기자
2007.02.28 16:30:15

[이데일리] 2005년 4월 국민적인 관심 속에 굴포천 방수로 공사와 경인운하 건설 관련 갈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목표로 출범했던 굴포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굴포천협의회)가 지난 2월 별다른 합의나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온갖 갈등으로 염증과 자괴감 속에서 살아온 국민에게 한줄기 빛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새로운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지난 2년 가까이 굴포천 갈등을 해결하고자 수많은 논의와 고민, 귀한 시간을 바친 굴포천 협의회 위원장과 열두분의 위원께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글은 국민적 기대와 많은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굴포천 실험은 왜 실패로 끝났는지, 그리고 굴포천 사례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하는 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임과 동시에 발전을 위한 모색이다.

굴포천협의회가 실패한 이유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직의 성격 규정, 조직구성, 운영방식, 위원들의 자세, 의사결정 방식, 의사소통구조 등 다양한 요소들이 협의회 운영에 영향을 미쳤고 이 요소들 사이에 상호연관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협의체는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임의조직이다. 일반적으로 협의체는 해당사안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논의 결과를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에 넘기기 위해 만든 조직을 말한다. 의사결정에 책임이 없듯이 집행에 따른 책임도 부과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굴포천협의회는 협의체의 일반적인 성격에 총리실과 건교부가 의사결정권을 부분적으로 양도함으로써 자문적 성격과 의사결정권을 동시에 갖는 모호한 조직이 됐다. 협의회가 최종적인 결정을 앞두고 일부에서는 논의결과를 정부에 넘기자는 의견과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하자는 의견이 충돌하게 된 주요원인도 조직의 성격에 대한 내부 혼란 때문이었다.


협의회는 본래 주요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조직이다. 주요 이해관계자는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장 영향을 크게 받는 집단 또는 개인과 ▲해당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집단 혹은 개인을 의미한다. 주요 이해관계자가 배제된 논의는 향후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렵고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굴포천협의회가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인천, 부천, 김포, 서울 강서 등의 지자체, 지역단체, 지역주민을 배제한 채, 찬반에 근거하여 위원수(찬성6, 반대6)를 기계적으로 배분하여 구성하고, 자문 역할을 수행할 전문가와 중앙 활동가를 중심으로 논의구조를 형성한 것은 갈등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논의를 추상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굴포천협의회의 운영목적을 실질적으로는 ‘경인운하 사업에 대한 추진여부’로 단일화함으로써 굴포천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 개진과 창조적이고 대안적인 논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왜소한 이슈설정으로 위원들 자신이 ‘경인운하를 건설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합의하기 어려운 이분법적 함정에 스스로 빠지게 됐다.


굴포천협의회 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는 이번 갈등현안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였다. 협의회 구성 전에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나, 협의회 구성 이후 위원장의 역할이 회의 촉진자(facilitator)인지, 회의진행자(moderator)인지, 조정자(mediator)인지, 중재자(arbitrators)인지 매우 모호한 상태가 되어 회의진행과 의사결정과정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합의 또는 합의형성이란 말은 참여한 이해관계자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말하고, 사회적 합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사회적 현안에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굴포천협의회가 특별한 근거와 보완대책 없이 의결정족수를 3분의2로 묶어놓은 것은 내용적 합의보다는 조급한 성과에 집착한 결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굴포천협의회는 협의회 구성에 있어서 지역주민들을 배제(1명을 제외하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의견을 타진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전혀 없었다. 또한 재적의원 3분의2와 관련된 논쟁에서도 확인되는 바와 같이 협의회 내부에서 조차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함으로써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한계와 운영상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굴포천협의회는 기존의 정부에 의한 정보독점과 비밀주의, 일방통행식 통치관행을 극복하고, 기관, 단체, 주민이 참여하는 논의구조를 형성하고, 운영규정을 만들고, 공정한 진행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떠나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굴포천 사례는 이제 우리 사회도 갈등을 관행과 경험에 의해 해결하던 것에서 벗어나 갈등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갈등해결과정을 합리적으로 설계할 줄 아는 갈등전문인의 양성이 시대적인 과제임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parkts2923@socon.or.kr)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前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
-前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행동학연구원
-前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