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상용 기자
2004.11.08 17:45:30
[edaily 오상용기자]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이후 한국 경제의 화두는 단연 구조조정이었습니다. 수년간의 구조조정으로 이제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력감축과 비용절감엔 도가 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향후 수십년간 뭘 먹고 살지에 대해선 막막해 보입니다. 국제부 오상용기자는 `포화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시중은행 한 간부를 만났습니다. 전에 금융팀 기자로 있을 때 알고 지내던 분입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최근 은행권의 움직임으로 흘렀습니다.
"다들 내년 사업전략 짜느라 바쁘죠 뭐. 내년 업황이야 진검승부 아니겠어요. 한미은행 인수한 씨티은행이 공세를 본격화할 것이고, 행장 교체된 국민은행도 간단치 않고요. 핵심 전략이 뭐냐고요? 글쎄 새로운게 있나요. 다양한 수익원 창출하고 연체율 낮추고, 고객 유치 잘하고..그런거죠 뭐"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시장은 포화상태인데, 은행권 평균 수익을 앞지를 만한 무기가 마뜩지 않다는 푸념이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매달렸던 미국 기업들의 관심이 `성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비용절감만으로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장전략을 고민하는 많은 기업들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WSJ는 전했습니다.
저는 "이 은행이 처한 상황도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미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용감축방안을 마련하라 그러면 반나절만에 뚝딱 만들겠지만, 성장전략을 내놓아라 하면 머리속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기업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포화시장은 없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돌파구를 찾아 나선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램 차란 교수와 미시건대 경영학 교수 노엘 M티치는 공동저술서 `Every Business is a Growth business(모든 기업은 성장한다)`에서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회사는 없으며 100퍼센트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도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역설합니다.
이들이 예로든 신용카드 회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지난 1980년대 초반 루 거스너는 이 회사의 신용카드 사업을 책임지게 됩니다. 당시 각 팀에서 올라온 보고서는 신용카드 산업이 포화상태에 직면했다는 비관론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스너는 이를 보기좋게 뒤엎었습니다. 그의 전략은 신용카드 시장을 소비자별로 세분화하자는 것이었지요.
법인카드와 골드카드, 플래티넘 카드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됩니다. 소비자별로 다른 욕구를 채워주겠다는 거스너의 전략은 먹혀들었고, 아메리카 익스프레스는 10년 넘게 연평균 19%의 수익 신장세를 달성했습니다.
80년대 월마트의 신화창조도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유명 대형 유통업체인 시어스로벅(sears roebucks)와 JC페니(JC Pennys)는 소매유통시장은 더 이상 파고들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턴의 생각은 달랐지요. 그는 지방에 저가 할인매장을 설립, 소도시 주민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포화시장에서 성장의 잠재력을 찾아낸 월마트는 세계적인 대형할인업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두명의 저자는 "포화시장은 없다는 마음가짐과 함께 사고의 다양성도 필수 덕목"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와관련, 90년대말까지 GE캐피털을 이끌었던 게리 웬트 전 회장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남성용 비즈니스 정장을 만드는 회사를 가정해 봅시다. 만약 `남성 비즈니스 정장`이라는 부문에만 생각을 맞추면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공급하는 회사에 몸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온갖 종류의 대안이 떠 오르게 될 것입니다."
지난 83년 GE캐피털이 거래기업인 철도회사 타이거인터내셔널이 부도를 내면서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을 위기에 놓였습니다.당시 GE캐피털은 이 기업을 아예 사들여 기차 리스회사로 바꿔버리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분석가들은 GE캐피털이 없었다면 90년대 GE의 연평균 성장률은 4%에 그쳤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그만큼 GE캐피털은 그룹의 핵심엔진이었던 것입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신문지상에서 `비용절감` `인력감축` `구조조정` 등의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저효율 구조를 해소하고 일정부분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같은 조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손쉽다고 해서, 단기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같은 처방에만 의존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성장의 계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지금 세계 일류기업들의 모습은 모두 성장이라는 끈을 놓지 않은 기업들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