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은 몰랐다'…그리스에 베팅한 큰 손들 '패닉
by권소현 기자
2015.06.29 11:34:46
그리스 유로존 잔류에 베팅…국채만 300억유로 이상 투자
아인혼·폴슨 등 헤지펀드 대부도 그리스 은행에 물려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그리스가 예상치 못한 ‘국민투표’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그리스 국채와 은행주 등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들도 망연자실한 상태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이 낮다며 소신 있게 투자했지만, 최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거액의 투자손실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아인혼, 존 폴슨 등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들도 그리스에 물렸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자포니카 파트너스, 프랑스의 H2O, 까미냑 게스통 등 자산운용사 뿐만 아니라 파랄론, 포트리스, 뉴욕캐피탈바우포스트, 나이트헤드앤 그레이락캐피탈 등의 헤지펀드들이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큰 손으로 꼽힌다. 대략 300억유로 가량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헤지펀드는 그리스 은행에 베팅했다.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탈 창업자와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은 무수익여신 비율이 50% 이상이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은데도 피레우스 은행 주식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페어팩스파이낸셜홀딩스와 윌버 로스와 같은 일부 거액 투자자는 그리스 주요 은행 중 하나인 유로뱅크 지분을 상당규모로 들고 있다.
그리스 대기업도 투자대상이었다. 포트리스캐피탈은 그리스 최대 페리업체인 아티카홀딩스의 채권을 1억달러어치 보유하고 있고, 뉴욕캐피탈은 건설에너지업체인 GEK 테르나 지분 10%를 확보한 상태다.
작년 블랙스톤은 그리스 부동산 개발업체인 람다 디벨롭먼트의 지분 10%를, 써드포인트는 7억5000만달러 규모의 그리스 주식형펀드를 출시했다.
이 같은 투자는 대부분 2013년과 2014년 초에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저금리 기조 속에 그리스 자산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던 시기였다. 그리스 정부가 5년간에 걸쳐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던 시기다.
하지만 급진좌파 연합인 시리자가 정권을 잡은 이후 투자자들은 그리스 국채를 내다 팔고 은행주를 매각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이에 따라 당시만 해도 그리스에 투자한 해외 펀드는 100개가량이었지만, 1년 새 크게 줄었다.
그 와중에서도 용감한 몇몇 헤지펀드는 남았다. 현지 브로커들은 대략 40~50개 펀드로 추정하고 있다. 새로운 좌파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유럽과 구제금융 협상안에 합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중간에 덜컹거리기는 해도 장기적으로 그리스가 결국 유로존에 남아 있을 것으로 내다봤고, 공포에 질려 투자를 회수하기보다는 보유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긴급유동성지원도 현행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리스는 디폴트로 성큼 다가섰다.
겁먹은 예금자들은 주말 동안 ATM으로 달려가 현금을 확보하느라 바빴고, 29일부터 은행 영업정지와 예금인출 제한 조치가 이뤄진다. 금융시장 패닉을 막기 위해 29일 하루 그리스 증시 휴장을 결정했지만 다시 문을 열면 폭락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은행주에 투매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ECB의 지원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채 금리는 현재 12% 안팎이지만 투매로 급등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거래 자체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고 유로존을 떠난다면 헤지펀드들에는 그리스에 투자한 것이 최악의 투자실패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