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예금 줄고, 수시입출금예금은 급증

by김범준 기자
2020.08.05 10:53:32

정기예금 4개월 누적 25兆 빠져..이탈세↑
''수시입출'' 요구불예금 3개월 새 75兆 급증
요구불예금 잔액 증가세 갈수록 빨라져
제로금리·시장불안에 ''현금성 자산'' 선호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은행권 정기예금에서 최근 4개월 동안 25조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반면 언제든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통장은 같은 기간 약 74조원이 불어났다. 경제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실탄’을 비축하고 상황을 관망하는 ‘대기성 자금’이 급증하는 분위기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627조6655억원 집계 됐다. 이는 전월(6월) 말 대비 약 0.9%(5조4259억원) 감소한 규모다.

올 들어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3월 652조3277억원을 기록한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타고 있다. 전달 대비로 4월 -2조7079억원 감소한 뒤 5월 -5조8499억원, 6월 -10조6785억원, 7월 -5조4259억원 등 4개월 동안에만 25조원 가까이 은행 정기예금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반면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96조1932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약 5.3%(29조8772억원) 증가했다. 이는 전월 증가분인 4.5%(24조3628억원)보다 많은 수준이다.

은행 요구불예금은 지난 1월 말 약 482조1000억원에서 지난 3월 522조5000억원까지 늘었다가 4월 약 1조4000억원 소폭 감소했다. 이후 5월 들어 다시 약 21조원 증가하며 반등세를 탄 뒤 6월 약 24조3628억원, 7월 29조8772억원 등 증가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증가액(약 56조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사진=이데일리DB)
요구불예금은 자유입출식예금과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등 언제든 자유롭게 꺼내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사실상 ‘현금’인 셈이다. 당연히 짧게는 6개월, 1년 등 일정 기간 돈을 묶어두는 정기예금 등 저축성예금 보다 이자가 낮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고 안정적인 정기예금 통장에서 돈을 꺼내, 금리 매력이 없는 수시입출금식 통장에 예금을 맡기는 ‘기(奇)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의 확대와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 등이 커지면서 언제든지 바로 현금화 할 수 있는 대기성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여기에 주식시장과 채권시장마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중의 대기성 부동자금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지면서 잠시 안전한 곳에 ‘실탄’을 비축해두며 관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기준금리 연속 인하로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정기예금과 수시입출식예금 금리 차이가 미미해진 점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날 기준 은행권에서는 최저 연 0.45% 이자만 주는 1년 만기짜리 정기예금 상품도 판매 중이다.

오석태 소시에떼제네랄(S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는 갈수록 낮아지고 시장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금리가 더 내려갈 경우 은행의 정기예금과 요구불예금 금리 차이는 없어지면서 결국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