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CEO]닛산 비밀조직이 만들어낸 걸작 `인피니티`
by정재웅 기자
2010.12.03 16:11:32
25년전 닛산 내부조직 ''호라이즌 태스크 포스''서 태동
르노와 합병 이후 ''디자인 혁명''..전 세계 주목
출범 20년 만에 ''명품''반열..향후 200년 준비한다
[이데일리 정재웅 기자] 어떤 제품이든 명품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명품들은 대부분 이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수백년까지 세월의 무게감과 함께 전통, 철학이 담겨있어야 진정한 명품으로 인정받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명차로 꼽는 자동차 브랜드들은 그 연원이 매우 길다. 자동차 태동기부터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개발, 디자인으로 업계를 선도한 메이커의 차량에 우리는 환호와 탄성을 보낸다.
하지만 이 법칙을 과감하게 무시한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시쳇말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외치는 이 브랜드는 바로 닛산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인 '인피니티(Infiniti)'다.
'대중차'에만 주력해왔던 닛산은 더 이상 대중차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미 유럽의 선진 메이커들은 북미시장을 바탕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론칭하고 '더 고급스러움'에 치중하고 있는 터라 닛산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지난 1985년 닛산은 마침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론칭을 결정하고 사내에 비밀조직을 설치한다. 이름은 '호라이즌 태스크 포스(Horizon Task Force)'.
| ▲ 닛산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인 인피니티. 인피니티는 '명품은 오래된 것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독창적이고 개성있는 디자인과 성능으로 불과 20여 년만에 세계적인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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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태스크포스는 우선 자동차를 자동차로만 인식하지 않는 '발상의 전환'부터 시작했다. 기존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아닌 페덱스(FedEx), 포시즌 호텔(Four Seasons Hotel), 노드스트롬 백화점(Nordstrom department stores) 등 각기 다른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이 찾아내고 연구한 내용들은 자동차 전시장이라기보다는 마치 고급 호텔처럼 보였던 최초의 인피니티 전시장에서부터 명함 디자인, 부품 및 액세서리 포장에 이르는 전 부문을 아우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I)에 영향을 미쳤다.
그로부터 2년 후. 닛산은 럭셔리 브랜드의 명칭을 '인피니티'로 확정하고 본격적인 차량 개발에 들어갔다. 브랜드를 연구하고 새롭게 론칭하는 데에만 2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런만큼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피니티' 엠블럼은 전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다.
인피니티(Infiniti)라는 브랜드 명은 'Infinity(무한대)'의 Y를 I로 바꾸어 철자를 차용한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최고의 안락함과 안정성, 고급스러움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피니티'를 럭셔리 브랜드로 확정한 닛산은 본격적으로 이에 걸맞는 차량 개발에 착수한다. 그렇게해서 탄생한 것이 지난 89년 북미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인 고성능 세단 Q45와 고성능 쿠페 M30이다.
하지만 북미시장 진출 초기, 인피니티는 쓴 맛을 봐야 했다. 대중차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선보였던 '젠(禪) 마케팅' 때문이었다. 자동차보다는 일본식 정원과 돌, 나무 등을 보여주는 등 정적인 이미지 위주의 마케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일본차'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비난을 들으며 인피니티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 ▲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어스 회장. 그는 인피니티가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한 초석을 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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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일본차임을 숨기고 북미시장을 노크했던 경쟁사 도요타의 '렉서스'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성능은 렉서스보다도 더 뛰아나다는 평을 받았지만 '너무나 일본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로 인피니티는 북미진출 초기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하지만 닛산에게도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1999년 르노와의 합병이다. 새롭게 CEO로 취임한 카를로스 곤 회장은 닛산의 정상화를 공언하며 대대적인 개혁작업에 나섰다.
곤 회장은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제시하며 디자인 혁신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피니티만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 'Vibrant Design(가슴 설레는 디자인)'의 시초다. 지금껏 인피니티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가장 차별되고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었던 시발점은 여기서 부터다.
시로 나카무라(Shiro Nakamura) 인피니티 디자인 최고책임자 겸 부사장의 "모든 것은 하나의 선에서 시작된다(Everything starts with a single line)"의 말에 바로 인피니티 디자인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인피니티는 북미시장을 중심으로 연이어 새로운 차종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독특하고 자연을 형상화한 자신있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미 한번의 뼈아픈 실패를 맛봤기에 닛산의 각오는 비장했다.
| ▲ 1989년 인피니티가 처음으로 북미시장에 문을 두드리며 선보였던 Q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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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되고 시선을 사로잡는, 보고만 있어도 움직이는 듯한 디자인과 그에 걸맞는 성능.여기에 인피니티 브랜드와 어울리는 고객 서비스로 단단히 무장한 닛산은 Q45에서 콤팩트 세단 G20, 드라마틱한 스타일의 J30 럭셔리 세단과 고성능 세단 I30, 럭셔리 SUV QX4를 잇따라 선보였다.
아울러 지난 2002년 3월,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인피티니 G35 세단이 출시됐고 10월에는 다이내믹 세단 M, 11월 G35 쿠페, 2003년 1월 크로스오버 SUV의 대표주자 FX가 연이어 출시되면서 북미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피니티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특히 닛산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고성능 세단을 대표하던 스포츠카 브랜드, 스카이라인의 V35세단을 기반으로 탄생한 G35 세단은 기존 일본차와 차별화되는 주행성능을 제시하며 출시와 동시에 히트 모델이 됐다.
닛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럭셔리 고성능 SU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FX시리즈는 물론, 대형 럭셔리 SUV 인피니티 QX56, 2세대 인피니티 M 등 인피니티의 진화는 계속됐다.
자신감을 얻은 닛산은 이번엔 컨버전스 모델을 내놓는다. 2007년 말 출시한 인피니티 EX가 그것. 쿠페와 SUV를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크로스오버, EX는 스타일과 실용성, 성능의 새로운 조화로 CUV라는 장르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올해 인피니티는 또 하나의 야심작을 선보였다. 바로 인피니티의 간판 모델인 인피니티 M세단의 3세대 모델이다. 디자인의 제왕 인피니티의 미래 디자인을 대변한다는 평을 들을 만큼 '뉴 인피니티M'은 인피니티의 디자인 철학을 '모던(Modern)'으로 재해석했다.
| ▲ 인피니티의 야심작 '올 뉴 인피티니M'. 국내 출시 5개월만에 판매 1000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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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라이트(Jim Wright) 인피니티 유럽·중동 부사장은 "자동차업계의 판도는 수년에 걸쳐 바뀌어왔지만 최고의 성능, 최고의 럭셔리,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전통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발혔다. 20년만에 명품 반열에 오른 '인피니티'. 그들은 지금 향후 20년이 아닌 200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