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군, '나토 뒷마당' 리비아에 장기 주둔 모색

by방성훈 기자
2023.09.15 15:46:08

"러, 벵가지·토브룩 등 지중해 연안 항구 권한 요청"
러 국방차관 등 최근 수주간 리비아 군벌과 논의
아프리카 영향력 확대 및 美·나토 견제 의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가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에 자국 해군을 장기 주둔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뒷마당 격인 지중해에서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진=AFP)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리비아 정부 관리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유누스-벡 예프쿠로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을 포함한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최근 리비아 군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을 만나 그가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 동부의 지중해 연안 항구에 자국 해군을 장기 주둔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예프쿠로프 차관 등은 협상 및 로비를 위해 리비아를 직접 방문해 수주 간 머물렀다. 한 리비아 정부 관리는 “러시아 측은 벵가지와 토브룩 등의 항구에 대한 접근 권한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두 항구 모두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400마일(약 640㎞)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러시아가 지중해에 해군을 주둔시키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토를 압박하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민간 용병그룹인 바그너그룹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키워왔으나, 바그너그룹은 지난 7월말 무장반란 이후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간 상태다. 리비아 역시 바그너그룹이 진출한 아프리카 국가들 중 한 곳으로 핵심 파트너로 꼽힌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서방 주도 동맹에 합류토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앞서 미국은 결과적으로 실패에 그쳤지만, 지난 여름 친러시아 정권이 장악한 니제르의 교착상태를 종식시키려고 시도한 바 있다. 이달 말엔 미국의 외교·군사 합동 사절단이 리비아를 방문해 하프타르 최고사령관에게 바그너그룹 용병들을 추방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도록 압력을 가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해군이 리비아에 주둔하게 되면 군사적으로 미국 주도의 나토를 압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다만 러시아가 군사 인력 배치, 탄약 창고 또는 기타 보급품 보관을 위한 시설 등 인프라를 추가로 개발하기를 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WSJ는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리비아에 진출하면 나토 회원국들에 즉각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둔 병력이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유럽을 대체할 에너지 통로를 확보하고 서방과 러시아 간 글로벌 세력 대결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수단 특사를 지낸 캐머런 허드슨은 “러시아는 (아프리카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저지해)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