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현동 기자
2006.10.17 19:23:11
[이데일리 김현동기자]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부자라고 하면, 보통 재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을 말해온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최근 한 은행이 조사한 `부자의 기준`에는 재산이 30억원은 넘어야 부자 축에 낄 수 있다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부자의 기준이 크게 높아진 것을 보니 격세지감마저 듭니다. 경제부 김현동 기자는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얼마 전 발표된 ‘아시아·태평양 연례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 숫자가 8만6700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지난 해 한국 증시가 크게 오르고 집값이 많이 오른 게 부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부자가 많이 늘어나면서 부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모양입니다. 한 시중은행이 지난달 20세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부자의 기준은 재산 규모가 어느 정도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30억원을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10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이라고 답한 비율도 10%나 됐습니다.
사실 돈이란 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돈이 돈을 낳곤 합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은행의 부자고객을 상대하는 프라이빗 뱅커(PB)들이 돈 되는 상품을 소개해줍니다. 세무에서부터 상속·증여까지 자문 서비스를 해 주니까 돈을 잃을 염려도 없습니다. 그러니 보유하고 있던 땅값이 올라가거나 주식 가격이 상승하면,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한국 부자들의 부가 늘어났다는 것이니, 우리나라의 부가 늘어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돈은 필요한 것이고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부자의 기준이 30억원으로 올라갔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항의섞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10억 만들기`를 인생의 목표로 재테크에 열중하던 친구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1억 만들기에 성공해 이제 부자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싶었는데, 목표가 한 참 더 멀어졌으니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전셋값을 1억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부자의 기준`같은 것은 신선놀음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누구는 `남은 건 로또뿐`이라며 자포자기하기도 하더군요.
기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1억원이면 웬만한 서울 시내 아파트는 살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1억원으로 서울 시내에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올 하반기 대졸 사원의 초임 평균은 3000만원대에 불과합니다. 연봉 3000만원으로 1억원 전셋집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돈을 모아야 할까요.
부자들의 부가 늘어나는 속도와 함께 서민들의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 한, 부자아빠와 부자엄마를 제외한 이들의 자녀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부의 압박에 시달릴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오늘 부의 상승이 미래 세대의 빚이 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