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 끝에서 만난 '노르웨이의 기억' [여행]

by이민하 기자
2026.05.08 06:00:00

노르웨이 최북단 시르케네스 여행기
34개 항구 잇는 ''후르티그루텐''의 종점
전쟁 상흔, 국경에 갈라진 원주민 이야기
320차례 공습 흔적 품은 방공호도 그대로
잊혀진 언어 ''스콜트 사미어'' 배우는 주민들
바렌츠해 킹크랩 체험까지 ''북극 추억&...

노르웨이 최북단 시르케네스의 전경. 시르케네스는 핀란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구 3404명(2023년 기준)의 작은 마을이다. (사진=노르웨이 관광청)
[시르케네스(노르웨이)=글·사진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후르티그루텐이 시르케네스 항구에 닿자 바렌츠해의 찬 바람이 먼저 밀려왔다. 노르웨이 북동쪽 끝,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이 작은 항구도시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시민들이 숨어들던 방공호가 남아 있고, 차로 40분 거리 네이든에선 사미족 사람들이 사라질 뻔한 스콜트 사미어를 다시 배우고 있었다. 피오르와 설경만 보고 지나치기엔 이 도시가 품은 시간이 너무 깊었다. 이곳에서 바다는 오래전부터 길이었다. 산과 피오르가 육지를 끊어놓은 노르웨이에서 사람들은 배를 타고 마을과 마을을 오갔다. 후르티그루텐이 닿은 시르케네스에는 그 바닷길의 역사와 전쟁의 상흔, 국경에 갈라진 원주민의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었다.

시르케네스로 향하는 여정은 ‘후르티그루텐’(Hurtigruten)에서 시작된다. 1893년부터 베르겐과 시르케네스를 오가며 노르웨이 해안 34개 항구를 이어온 연안 정기선이다. 지금은 크루즈 상품으로 알려졌지만 출발은 생활 교통 수단이었다. 산과 피오르가 육지를 잘게 나눈 노르웨이에서 배는 오랫동안 마을과 마을을 이어왔다.

배 안은 단정했다. 북유럽풍 라운지와 카페, 커다란 창밖으로 검푸른 바다와 피오르 절벽이 이어졌다. 절벽 아래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배가 항구에 닿을 때마다 사람과 짐이 오르내렸다. 크루즈라기보다는 바다 위를 달리는 완행열차에 가까웠다.

1893년부터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시르케네스까지 노르웨이 해안 34개 항구를 쉬지 않고 오가는 배 ‘후르티그루텐’ 배 내부 (사진=이민하 기자)
이 배에서 10년간 셰프로 일한 얀 에릭은 “폭풍이 오면 도로가 막히고 공항이 닫히지만 후르티그루텐은 출항한다”며 “바다는 늘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노르웨이에서 바다는 풍경이기 전에 길이었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막을 때 사람들은 바다로 돌아갔다.

후르티그루텐의 상징성은 2011년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의 생중계에서도 드러났다. 베르겐에서 시르케네스까지 134시간 42분 45초의 항해를 광고와 해설 없이 내보냈고, 500만여 명 노르웨이 인구 중 누적 기준 320만여 명이 시청했다. 훗날 ‘슬로우 TV’라는 장르를 낳은 이 방송은 해안선이 노르웨이인의 국민적 기억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시르케네스 도심엔 2차 세계대전의 전흔을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남아 있다. 평범한 콘크리트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차갑고 눅눅한 바위 터널이 이어진다. 물 떨어지는 소리와 곰팡이 냄새가 이곳이 한때 피난처였음을 실감하게 한다.

시르케네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군사 거점이었다. 독일군의 무기고와 잠수함 기지가 들어서면서 연합군과 소련군의 폭격 대상이 됐다. 4년 동안 도시는 320차례 공습을 받았고 폭격 경보는 1000번 넘게 울렸다.

경보가 울릴 때마다 시민들은 앤더스그로타로 대피했다. 한 번에 최대 2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이곳엔 전기도 화장실도 없었다. 촛불 아래에서 노인들이 숨을 거뒀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지상에서는 전쟁이 이어졌고 지하에서는 일상이 가까스로 유지됐다.

오늘날 앤더스그로타는 시르케네스의 대표적인 역사 관광지다. 시르케네스 스노우 리조트를 세운 코라 씨의 어머니도 이곳에서 폭격을 피했다. 코라 씨는 훗날 이 공간을 일반에 개방하고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역의 기억을 전하는 일에 의미를 둔 선택이었다.

방공호를 둘러보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시르케네스의 조용한 거리도 다르게 보인다. 눈 덮인 항구와 낮은 건물들 사이에 전쟁의 시간이 겹쳐 보인다. 도시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르케네스에서 차로 약 40분 떨어진 네이든(Neiden)의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핀란드·러시아 접경지대에 살아온 스콜트 사미족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만난 도슨트 다이야는 먼저 사미어 노래를 들려줬다. 낮고 긴 음이 박물관 안을 채웠다. 그는 “이 노래는 겉으로는 딸을 찾아 헤맨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지만, 내게는 사라진 언어를 찾는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사미어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네이든 일대에서 되살리려는 말은 스콜트 사미족이 써온 ‘스콜트 사미어’다. 스콜트 사미족은 노르웨이 북동부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 지역에 살아온 원주민이다. 19세기 이후 국경이 거듭 바뀌면서 이들의 생활권은 세 나라로 갈라졌다. 다이야의 할아버지도 러시아 땅에서 태어나 핀란드로 이주해야 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쪽 사미족과의 교류도 끊겼다. 다이야는 “전쟁이 또 가족을 갈라놓고 문화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스콜트 사미어는 노르웨이의 동화정책과 국경 변화 속에서 구사자가 크게 줄었다. 다이야는 노르웨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출신인 그는 지금 노르웨이에서 9명을 대상으로 언어 복원 수업을 열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스콜트 사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더 늘어납니다. 이 언어는 그렇게 이어질 겁니다.”

시르케네스의 즐거움은 묵직한 역사에만 있지 않다. 바렌츠해로 나가 통발을 끌어올리고, 갓 쪄낸 킹크랩을 맛보는 일은 이 작은 항구도시가 주는 선명한 보상이다.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 박물관 안에 울리던 사미어 노래, 식탁 위로 피어오르던 뜨거운 김이 한 도시 안에서 겹친다. 노르웨이의 끝에서 여행은 풍경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북쪽의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

▶가는 길=인천에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시르케네스로 들어가는 길이 일반적이다. 핀에어가 인천~헬싱키 직항편을 운항하며, 헬싱키에서 시르케네스까지는 항공편으로 약 2시간 걸린다.

▶후르티그루텐 크루즈=베르겐~시르케네스 구간을 운항하는 노르웨이 연안 정기선이다. 시르케네스 출발 남행 노선은 6일 일정이다. 요금은 2인 1실 기준 1인당 약 1238달러부터이며, 시즌과 객실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

▶킹크랩 사파리=시르케네스 스노우 리조트에서 운영한다. 여름에는 RIB 보트, 겨울에는 스노모빌 썰매를 이용한다. 현장에서 바로 쪄낸 킹크랩을 맛볼 수 있다.

▶앤더스그로타 방공호=시르케네스 시내 중심부에 있다. 가이드 투어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요금은 1인당 300크로네 수준이다. 소요 시간은 약 30분이다.

▶네이든 아브 박물관=시르케네스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E6 국도변에 있다. 운영 시간은 계절마다 달라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