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3.0]③`한국식 복지` 백년대계를 짤 때다
by윤진섭 기자
2011.03.15 13:50:00
<창간기획·1부>역할모델, 대한민국이 해보자
韓 세계서 가장 빠른 고령화..재정부담 갈수록 커져
`사각지대` 우선 논의..경제력에 바탕두고 구조 짜야
[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복지 욕구가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빈곤층은 얇아진 지갑과 무섭게 치솟는 물가에 고통을 호소하며 확대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또 대졸자들은 "일자리를 달라"하고, 베이비 붐 세대는 "수십년에 대한 복지"를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복지`를 외치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복지 요구가 뜨거운 것일까? 급속한 고령화 진행이 가장 큰 이유다. 고령화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이 복지 욕구를 강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은 2000년 7%를 넘어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현재 11%까지 높아졌다.
2018년엔 14%를 넘어서 나라 전체가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다시 8년이 지난 2026년이 되면 20%를 넘어 초(超)고령사회가 된다. 2050년이 되면 65세 인구비율은 38.2%로 상승,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37.7%)을 넘어서게 된다.
사회적 양극화 역시 복지 담론을 달군 이유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산·소득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커지면서 자연히 소득 계층 사이에 소득도 크게 벌어졌다.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박봉(薄俸)의 직장인들의 복지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형적 중산층으로 볼 수 있는 `내 집 가진 정규직`이라 해도 미래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
자녀 교육비 때문에 노후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직장을 잃거나 정년퇴직하는 순간 소득이 급격히 줄면서 저소득층으로 추락할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도 복지수요가 터져 나올 때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즉 국민의 의식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정도로 경제가 발전한 시점에서 양극화 현상과 삶의 질에 대한 중산층의 기대가 커지면서 복지 욕구가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경제 성장기에는 굳이 복지를 늘리지 않아도 노동시장 소득이 올라 나은 삶은 살 수 있었다"라며 "하지만 국민소득이 높아진 상황에서 성장이 이를 뒷받침 못한 단계에 접어들면 복지 욕구가 터진다. 프랑스,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경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성장통과도 같은 국민의 복지 욕구를 정치권이 이용하면서 복지 논쟁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달굴 변수로 부상했다. 국가의 능력을 벗어나는 과도한 복지 공방이 비난만 한다고 해서 진정될 단계는 이미 지났다.
민주당은 `3+1(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이라는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걸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향해 가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전월세 상한제까지 들고 나와 세(勢)몰이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도 중산층을 포함하는 소득 하위 70% 까지를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각종 혜택을 확대하는 소득 70% 복지론을 내걸고 복지 전쟁에 뛰어들었다.
차기 대권 주자들의 복지 플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여권 내 예비 대권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세 후보 모두 재정투입의 효율성을 고려한 `맞춤형 복지`가 공통적이다.
받아들이는 쪽에선 신중하다. 복지의 크기만 키워 공짜 약속을 할 경우 후손에게 빚잔치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병(病)으로 재정위기에 몰린 일본, 그리스, 영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가 부채가 1000조엔 육박하고 있는 일본은 고령화로 연금·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데다 올해 예산의 절반 정도인 40조엔을 국채를 발행해 충당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된 상태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현 복지제도를 더 늘리지 않고 유지해도 2050년 경에는 사회복지 지출이 GDP(국내 총생산)의 15%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국가 채무도 같은 기간 GDP의 36%에서 115% 선으로 급증할 것으로 연구기관들은 보고 있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상복지, 선택적 복지 논란은 둘째 치더라도, 현 복지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도 복지 지출은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며 "증세를 할 것인지, 현 복지 지출을 대대적으로 조정하던지 서둘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에 대해 심혈을 기울인 청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과거 참여정부의 `비전 2030`, 현 정부의 `미래비전 2040`이 그것이다. 이 연구 보고서의 요지는 복지 지출에 따른 재정적자의 확대 추세가 가파른 만큼 이에 따른 재원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인구고령화와 저 출산으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국민들의 세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권고였다.
복지에 대한 논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보다 더 설득력 있다. 시급하지 않은 공짜 밥 논란보다 사각지대 해소가 복지정책의 최대 이슈가 돼야 하다는 것이다.
국내 빈공층 규모는 전체 인구의 하위 20% 안팎인 740만~1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일을 하긴 하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 근로 빈공층도 250만명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데도 제도상의 허점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비일비재다.
이와는 별도로 복지의 미래를 그린 시나리오 작업이 하루 빨리 이뤄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복지에 대한 정부차원의 마스터플랜은 참여정부 당시 `비전 2030`, 현 정부의 `미래비전 2040`이 전부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밑그림이라기 보다는 향후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재정 부담을 보여준 보고서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권이나 복지 정책의 방향성, 비용 추산, 이를 뒷받침할 경제 운용 전략에 대한 종합 계획이 시급하다.
안 교수는 "복지에 대한 종합 계획 수립과 함께 국민이 어느 정도 복지를 원하고, 어느 정도 부담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합리적 합의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치권 역시 이 틀에서 복지에 대한 논의하는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