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현대상선 4000억 증자..제 식구 저버린 非情한 속내

by신성우 기자
2010.10.29 14:48:40

계획대로 자금조달..증자 때 범현대가 `입김` 차단 효과
주주청약후 잔액인수..현대證 상호출자 규제 묶여 배제

마켓 인 | 이 기사는 10월 29일 14시 18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 인`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신성우 기자] 현대상선(011200)이 `제 식구`인 현대증권(003450)을 저버려가며 4000억원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비정(非情)`한 증자 방식이 흥미를 더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건설 인수자금도 계획대로 조달해야 하고, 언제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현대중공업그룹을 비롯한 범현대가를 의식한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 현대상선은 지난 28일 이사회에서 보통주 1020만주(예정발행가 3만8900원 기준 모집금액 3967억원)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대표주관회사가 동양종합금융증권이다. 특히 잔액인수방식이다. 주주청약(12월23~24일) 후 곧바로 실권주를 동양종금증권(003470) 및 인수 증권사들이 떠안는 구조다. 현대상선으로서는 청약이 미달돼도 모집금액 만큼 자금조달을 할 수 있다.

현대상선에는 계열 증권사인 현대증권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이번 `일감` 역시 현대증권에게 줬을 터다. 증자금액이 4000억원이나 돼 수수료는 차치하고 라도 IB 트랙레코드를 쌓게 하는데 이만한 `딜`도 없다. 99년 12월 이후 7년만인 2006년 6월의 4200억원, 같은해 12월 3000억원 증자 때가 그랬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남 좋은 일(?)을 시킨 것은 다분히 잠재적 경영권 위협 세력인 현대중공업(009540), KCC(002380) 등 범현대가(현대상선 보유지분 30.5%)를 의식한 때문이란 게 IB 전문가들의 상당수 시각이다.


지금의 상황은 2006년 증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현대그룹이 현대차(005380)그룹과 함께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어 내달 12일 본입찰을 앞둔 긴박한 상황이다. 만일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된다면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은 40.6%까지 치솟는다. 현대건설이 현대상선 지분 8.30%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인수자금도 계획대로 조달해야 하고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하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주주배정 증자를 하는 발행사라면 흔히 선택하는 게 모집주선 방식이다. 주관회사에 실권주 인수 부담을 안지우니 잔액인수에 비해 수수료 또한 훨씬 덜 먹힌다.

현대상선이 주주청약후 실권주를 미발행할 게 아니라면 실권주를 3자배정해 계획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배정 대상자를 현재 40.8%의 지분을 소유한 현대그룹의 우호지분으로 확보할 수도 있다. 2006년 두 차례의 증자가 이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범현대가가 두려웠던 게다. IB업계 관계자는 "범현대가에서 실권주 배정의 성격을 놓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권주 배정이 무효소송으로 번지는 기업이 심심찮게 있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잡음을 피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주주청약후 실권주 일반공모다. 자금조달 측면만 놓고 보면 증시호전과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배경으로 높은 청약 열기를 보여주는 현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이 방식만으로도 거뜬할 수 있다.

설령 일반공모후 실권주가 걱정된다면 이를 잔액인수로 맡길 수도 있다. IB들도 선호한다. 이번 현대상선 증자 주관회사 선정에서 상당수 증권사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제안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공모 역시 불안한 구석이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범현대가에서 주주청약에 이어 일반공모에도 참여해 지분을 늘리는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잔액인수 방식으로 주주청약후 실권주를 곧바로 인수단이 책임지게 하는 방식으로 자금조달도 계획대로 하고 범현대가의 입김도 피하려 한 셈이다. 게다가 인수단 지분이 우호지분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계열 증권사 현대증권은 주관회사 선정에서 자연스레 배제됐다. 공정거래법상의 상호출자 규정에 묶여 잔액인수를 할 수 없어서다. 제 식구를 저버리며 현대상선은 `꽃놀이패`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