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發` 부동산PF 시행사 구조조정 본격화

by이진철 기자
2010.08.12 15:16:16

영세 시행사 PF 사업 부실, 파산신청 많아질 듯
채권단 옥석가리기 나서..구조조정후 사업 재추진

[이데일리 이진철 좌동욱 기자]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파산 신청을 계기로 영세한 시행사가 주도해왔던 대규모 부동산 PF 사업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은 사업 추진과 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시행사들에게 대형 건설회사들이 끌려다니는 PF 사업구조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손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PF 사업과 유사한 파산신청이 잇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12일 은행권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양재동 PF 사업 채권단은 지난 6일 서울 양재동 복합터미널 PF사업 시행사인 파이랜드와 파이시티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

채권단이 영세한 시행사를 배제하기 위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내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건설사업 인·허가권 등 사업권을 시행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이 부실해질 경우 지급보증 책임을 지는 시공사를 바꾸는 일은 있어도 시행사의 역할과 지위는 통상 인정해왔다.

채권단 관계자는 "부동산 활황기엔 건축부지를 확보하는 작업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던 시행사들이 사업 인·허가권을 확보해 대형 PF 사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며 "하지만 대형 시공사가 영세한 시행사에 끌려다니는 관행은 시정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시공사를 재선정한 후 채권단 주도의 사업추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양재동 PF 사업은 총 사업비는 2조4000억원 규모의 대형 유통단지 건설사업으로 이미 금융권이 대출한 돈만 8700억원에 이른다. 반면 시행사인 파이시티의 대주주인 파이랜드의 법정자본금은 작년말 기준 5000만원에 불과하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영세 시행사들이 주도해왔던 PF사업의 관행을 채권단과 시공사 주도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비슷한 사례가 다른 PF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양재동 PF사업의 경우 건축 인허가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사업이 중단됐고, 재무적투자자(FI)도 법정관리를 통해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만큼 시공사를 재선정한 후 채권단 주도로 사업이 추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채권단이 부실 PF 사업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넘어야할 장애물이 있다.



우선 시행사에 대해 파산신청을 하게되면 시공사가 PF사업의 채무를 대부분 부담해야 한다. 양재동 PF 사업의 경우 시공사인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금융권 채무가 동결돼 있기 때문에 채권단이 시행사 파산 신청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시공사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곳은 채권단도 부담이 있다"고 전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PF 사업은 대부분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사 역할을 맡은 곳"이라며 "게다가 이미 시행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채권단의 시행사에 대한 파산신청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작년부터 건설업에 대해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해 현재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진행중인 건설업체들이 상당수 나왔다. 따라서 시행사에 대한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돼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다른 문제는 채권단 파산신청에 대해 시행사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으로 맞대응하는 경우다. 양재동 PF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 역시 시행사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채권단, 시공사와 협의를 진행하겠다면서도 법적인 대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시행사측이 법적 소송을 통해 사업을 방해할 경우 파산선고 결정이 떨어지기까지 1년 이상의 시일이 걸릴 수 있다"며 "이럴 경우 금융비용이 불어나 사업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과거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업권에 대해 적당히 대가를 지불하고 시행사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채권단은 PF 사업에 대한 리스크를 더 부담하는 대신 사업성 분석과 리스크 관리를 보다 철저히 진행해 PF 사업 부실가능성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시공사에 대해서는 보증책임 의무를 면제하는 등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할 방침이다.

양재동 PF 사업의 경우 새로 들어올 시공사에 대해 선순위 담보권을 제공하고 지급보증 의무를 면제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분양가도 부동산 경기 불황을 반영해 당초 계획 대비 상당수준 인하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자금조달 문제로 논란이 됐던 용산국제업무단지(용산역세권)나 판교 알파돔씨티 PF 사업은 출자회사들이 시행사 역할을 맡고 있고, LH공사와 코레일 등 공기업이 땅 주인이면서 출자사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채권단이 시행사 파산 신청을 내기는 힘든 구조다. 다만 토지대금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고, 시공사도 지급보증에 난색을 보이면서 채권단들도 옥석을 가려 포기할 곳을 걸러내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자금조달 난항으로 인해 중단된 PF사업의 경우 부동산경기 침체로 사업추진이 불투명한 만큼 파산 등의 절차를 거친 후 재계약과 사업계획 조정을 통해 땅값 등 투자비용을 낮춰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견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부실 PF사업장들이 부동산시장이 살아나면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사회적 손실만 키우는 것"이라며 "사업범위 조정 등 구조조정과 더불어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정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