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한국의 일본화를 경계한다"..상하이서 격렬 토론

by윤도진 기자
2011.11.15 17:44:06

한중관계 20년-회고와 전망 학술대회
`양국 관계 강화` 대전제 속 열띤 논쟁
韓 측 "中 주변국에 위협적 태도 버려야"

[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한국에선 중국이 어떤 경우에도 북한을 지지할 것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큰 오해다.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북한은 중국이 북한 핵 보유를 지지해주길 바라지만 중국은 그러지 않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 큰 의견 차이가 있다."(중국 측 A교수)

"(중국은) 강대국이 될 수록 국제사회에서 그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에 맞는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감안해야 한다"(김흥규 성신여대 교수)

한국과 중국 학계의 양국관계 전문가들이 격한 논쟁을 벌였다. 15일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상하이총영사관이 주최한 `중한관계 20년-회고와 전망` 학술대회에서다. 천안함 사건·연평도 사태를 겪은 뒤 찬바람이 들이친 양국 관계를 대변하듯 이날 대회석상은 상대측 인식과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국 측 학자들은 중국이 최근 일련의 사건 속에서 북한을 옹호하고, 대국화 과정에서 주변국가들에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이 한중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양국이 과연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맞는지에 대해 회의가 든다"고 비판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과 교수는 "일련의 사태에서 중국이 한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위협의식이 커졌고 이것이 `미국의 귀환`을 도왔다"며 "미국에 대한 우려가 중국의 공세적 외교정책을 정당화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 학자들은 한국이 북한 입장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하이 소재 대학 B교수는 "한반도에 냉전의 잔해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중국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찬성하지 않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은 북한 핵개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측 C교수는 "연평도 사건 이후 한국의 일본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한국 외교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미국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 그는 이어 "북한은 중국이 명령을 내릴 대상이 아니다. 중국 입장에서도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궁국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역할임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중국 학자들은 최근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참여해 규모와 범위를 키우고 있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현했다.

궈셴강(郭憲綱)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TPP는 동아시아 통합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배경"이라며 "미국은 TPP를 격상해 동아시아 개입을 강화하고 일본은 이에 가입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오히려 한·중·일 사이의 FTA(자유무역협정)가 3국 모두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통점이 많은 한국과 중국이 먼저 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 이지용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의 TPP에 대한 의도는 정치적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한 경제적 효과는 대단하다"며 "한국은 (TPP에서) 제외됐을 때 겪을 손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뜨거운 논쟁이었지만 대전제는 양국 관계을 어떻게 개선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팡수위(方秀玉)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 부교수는 "21세기 들어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 정치 안보의 중심이 된 만큼 한중 관계는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며 "양국 관계가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었다"고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또 이날 학술대회가 양국관계를 주제로 열린 회의치고는 전례없이 뜨거웠다고 평가했다. 정치 중심에서 떨어져 있고 학풍이 진취적인 상하이에서 열린 배경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한 중국 측 참가자는 "베이징이었다면 정부 측 입장이 주를 이룬 회의가 됐겠지만 오늘은 사석에서처럼 자유로운 논쟁이 이뤄졌다"며 "지속적으로 이런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