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8.01.25 17:12:31
李당선자 국제 금융시장 불안 실물에 미칠 파장 꼼꼼히 챙겨
인수위 `성장률 공약 재검토` 시사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증시 급락,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해외 불안 요인이 국내로 파급되기 시작했고, 파장이 장기화될 경우 대통령 핵심공약인 연 7% 성장률 공약 이행에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당선자의 행보가 달라졌다. 당선자가 직접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가 하면 실무진의 보고 횟수도 늘리고 있다. 미국의 금융시장 불안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국내 실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인수위가 제시한 `현실적` 성장 목표 6% 성장률을 또 다시 낮출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6% 목표치를 고수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외 시장 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악화된 만큼 제반 여건을 살펴 성장목표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나섰다.
25일 이 당선자는 오전 9시30분부터 11시50분까지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을 만나,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관련해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이 당선자가 전날(24일) 직접 현장 전문가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긴급하게 마련됐다.
간담회 시간도 당초 1시간 30분으로 예정됐으나, 2시간 20분으로 50분 가량 길어졌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강만수 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는"당선자는 주로 의견을 듣는 쪽"이었다며 "특히 당선자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야기된 국내 증권시장 불안이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이와 관련해 이번 주에만 따로 두 차례 이상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가 이처럼 국내외 금융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 파장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시장과 실타래처럼 얽힌 국내 주식· 채권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가 급격히 침체될 경우,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 경제까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성장동력인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밖에 없다.
고유가와 더불어 고개를 쳐들고 있는 농산물, 원자재 가격이 세계적으로 `경기둔화속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 정부가 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려 성장률을 높이고 싶어도 불가항력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당선자의 '핵심공약'인 성장률 공약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강 간사는 "성장률 공약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정된다는 전제하에서 수립된 것인데 파장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며 "모노라인(미국 채권 보증회사) 부실 우려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예기치 못한 거시 경제 변수가 생긴 만큼 공약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성장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관련기사 ☞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 `속속` 하향…한국도) UBS의 경우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3.6%까지 낮췄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3%대로 낮춘 것은 UBS가 처음이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실현이 힘든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게 만드는 현실적 핑계를 제공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6% 성장목표는 현재 한국의 잠재성장률 4~5%보다 최소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인수위는 앞서 지난 13일 당선자에 대한 1차 국정과제보고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를 기존 7%에서 6%로 낮췄다. 경제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무리한 성장을 추구할 경우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후유증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잠재 성장률을 단기간에 1%포인트 끌어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재정경제부 역시 지난 23일 긴급 금융정책협의회 직후 "올해 대내외 불확실 요인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이 전망된다"고 강조한다. 잠재성장률 수준이란 재경부가 고수하고 있는 성장률 전망치인 4% 후반을 뜻한다.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더라도 새 정부의 부담이 여전하다는 것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하향 조정한 성장 목표치조차 달성하지 못할 경우 공약실행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거나 무능하다는 지적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도 임기 평균 잠재성장률 7% 공약은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 당선자의 '비전과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 리더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