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관용 기자
2023.12.28 12:09:56
통일부, 1979~1981년 남북 회담 문서 965쪽 공개
12·12 전후 혼란 틈타 총리회담 제안 등 대화 재개
5·17 쿠데타로 신군부 권력 장악 이후엔 강경해져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1979년에서 1981년까지 남한과 북한이 진행했던 정치 및 체육 분야 회담 문서 965쪽이 28일 공개됐다.
통일부가 이번에 공개한 문서에는 △1979년 초반 남북 간 변칙접촉 3차례 △남북 간 탁구협회 회의 4차례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방한 시 3당국 회의 제의 △1980년 초반 남북 간 총리회담 실무대표접촉 10차례 △1981년 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회담 제의 △1981년 남북한 체육회담 제의와 관련한 진행과정과 회의록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이중에는 김재규 중앙정보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 이후 북한은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는 편지를 국무총리와 각 정당·사회 인사에게 발송하는 등 남측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은 1980년 1월 1일 이종옥 정무원 총리 명의로 신현확 당시 국무총리에게 남북 대화를 제의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북한은 이 서한에서 “고위당국자회담도 성숙시켜나갈 용의가 있다”며 “귀하와 직접 만나 격의 없는 의견을 서로 나누자”고 했다.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장소는 판문점, 평양, 서울뿐 아니라 “제3국도 무방하다”며 대화 재개에 적극적이었다.
이와 함께 조국통일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일 부주석 명의로 같은 요지의 서한이 정치권 등 각계 인사 11명에게 함께 발송돼 판문점을 통해 우리 당국에 전달됐다. 서한의 수신인에는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 김영삼 신민당 총재, 양일동 민주통일당 총재, 윤보선·김대중·함석헌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민족연합 공동의장, 김수환 추기경 등 각 정당 대표와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이희성 육군참모총장도 포함됐다.
또 같은 달 북한은 남북 직통전화 재개통을 시도한 데 이어 다음 달 남북 총리 간 대화를 위한 제1차 실무대표 접촉에서 재개통에 합의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이후 일방적으로 남북 직통전화 소통을 끊은 후 남측의 재개통 촉구를 3년 6개월 넘게 무시하다가 12·12를 전후해 태도를 바꾼 것이다.
북한이 12·12 전후 ‘서울의 봄’ 시기 혼란을 틈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과 세력을 조성하려는 ‘위장평화공세’를 펼쳤다는 평가가 사료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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