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안재만 기자
2011.12.19 15:09:28
[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었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이를 두고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란 호평을 내렸다. 무장한 군인들과 철조망을 가르지르는 정주영 회장과 소떼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벤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소떼로 시작된 대북 사업은 현대의 튼실한 먹거리 역할을 했다. 2006년과 2007년 57억원, 3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2008년엔 이익폭이 197억원으로 늘었다. 매출은 매해 2000억원 이상이었다.
계열분리된 지금도 현대그룹에 있어 대북사업은 그룹의 상징 그 자체다. 현대아산 임직원들은 다른 현대 계열사보다 많은 임금을 받았었다. 현대그룹의 대표라는 자부심이 컸다.
그러다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었던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번에 더 큰 암초를 만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그것이다.
김 위원장 뒤를 이을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호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때문에 남북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금융권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입지가 아직 확고하지 않아 김일성 주석의 사망때보다 혼란이 더 클 것으로 염려한다.
바야흐로 혼란의 시대가 열렸다. 남북 관계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사망은 정치문제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이나 개성공단 입주업체, 방위산업체부터 여행, 물류업체, 심지어 식음료업체까지 예의 주시한다.
그간 사업 재개에 힘써온 현대그룹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스물아홉인 김 부위원장은 현대그룹과 협상 테이블에 앉기보다 내부의 반발을 가라앉히는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다시 한번 나서야 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현대그룹은 지금껏 그래왔듯 다시 한번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북한은 현 정부와 갈등이 컸던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때도 현대아산 앞으로 조화를 보냈고, 그 인연은 아직 이어져 있다.